8
태양이 지는가 싶더니 집안은 땅거미로 가득했다. 초여름 밤하늘의 별들은 유난히도 많았다. 모기들은 찾아와 굶주림을 해결하려고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황구렁이는 다른 뱀보다 약이 된다고 했지.’
운현은 아내를 생각하며 뒤란에 만들어놓은 화덕에 불을 지폈다. 뱀을 고아 아내에게 주었던 적이 있었기에 손쉬웠다. 단지에 뱀을 무명베 자루에 담아 넣고 물을 부어 푹 삶으면 되었다.
‘불쌍한 내 처. 병이 완전하게 치료 되어야 할 텐데….’
운현은 한숨을 쉬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총총 박혀있었다. 은하수에 있는 별들이 서러워서 수런거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어느 별이 견우와 직녀지?’
운현은 은하수를 응시했다. 헤어졌다가 칠월칠석날 만난다는 별의 전설을 생각하며 별자리를 찾았다.
‘아내와 헤어지면 안 된다. 며칠이나 함께 살았다고.’
운현은 아내의 죽음을 상상하며 고개를 저어댔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
‘하느님 저의 아내는 불쌍한 여자입니다. 살려 주소서.’
운현은 별들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북두칠성의 일곱 개 별이 선명하게 보였다. 별들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폐병은 낫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아내가 죽게 되면 나는? 내 팔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운현은 참으로 엉뚱한 환상을 하고 있었다. 아내의 죽음을 그려보았다. 처를 저세상으로 보내고 난 다음을 생각했다. 자신 처지를 상상하며 신세타령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엉뚱한 가정을 하고 있는 자신이 미웠다. 어쨌든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눈앞이 캄캄했다.
‘미친놈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아내는 죽지 않아!’
운현은 자신을 꾸짖으며 마음속으로 외쳐댔다. 정신병자처럼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댔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하면 안 되지.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들. 모든 건 조물주에게 맡기고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살다보면….’
운현은 용기를 내었다. 마음을 추슬렀다. 희망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절대로 놓으면 안 되었다.
‘금순은 남편인 내가 살려내야 돼.’
운현은 입술을 깨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늘에서는 많은 별들이 내려다보며 수런거렸다. 아내가 뒤에서 지켜보며 빙긋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9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풋보리바심을 하는 가 싶더니 일머리가 내달려 찾아왔다. 농번기가 되자 정신없이 바빴다. 어떻게 보리 베기를 했는지 몰랐다.
모내기가 끝났다. 소나기사 내려서 하늘바라기에 나락도 심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가뭄이 여러 날 계속 되었다.
천둥지기에 심어놓은 벼를 말라 시들어갔다. 해거름이 되자 하늘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 담겨있었다. 초저녁에 빗방울이 들더니 밤새에 비가 이드거니 내렸다.
아침이 되자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농작물에는 아주 좋은 반가운 단비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해갈이 되고 남을 것 같았다.
“장마가 들 모양이네.”
운현은 방을 나가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품팔이도 못가겠다.”
행동댁은 방에서 나와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비오는 날이 쉬는 날이지요.”
운현은 도롱이를 걸치고 집안을 한 바퀴 돌았다. 밤새 비가 왔기 때문에 새는 곳이 있는 지를 살펴보았다. 다행이 괜찮았다.
“아버지는?”
운현은 뒤란에서 나와 툇마루로 갔다. 어머니 옆에 걸터앉았다.
“네 아버지는 아침 일찍 들에 나가셨다.”
행동댁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밭매기 품앗이를 가기로 했는데 날씨가 방해하고 있었다. 가물어서 비가 오는 것은 참으로 반가웠다. 밭곡식이 시들어 말랐는데 단비를 맞고 생기를 되찾았을 것 같았다.
“몸도 좋지 않으시면서…. 논은 내가 둘러볼 참이었는데.”
운현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새아기는 요사이 몸이 많이 좋아지는 것 같더라마는….”
행동댁은 신음하듯 말했다.
“낫을 겁니다.”
운현은 당당하게 말하며 빙긋이 웃었다. 꼭 건강을 되찾아야 되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다 내 팔자다. 원망하지 말고 살아라.”
행동댁은 혀를 찼다. 자식이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억지로 결혼을 시켰던 부모의 책임도 있었다.
“하늘이 지어준 짝인데….”
운현은 이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불평한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도 없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보다 더 나은 삶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후회하면 할수록 상처가 커져 마음만 더욱 아플 뿐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 더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요.”
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 건너편 판수네 집에 밭매기 품앗이를 갔었다. 하도 답답해서 판수에게 네 사주팔자를 물어봤었다.”
“무꾸리하니 무어라고 하던가요?”
“상처할 사주를 갖고 태어났다고 하던데….”
행동 댁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사연을 뱉어냈다. 자식이 가련하고 불쌍해서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가끔 물어보았었다. 그 때마다 상처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에 항상 불안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에서 귀띔을 해주고 있었다.
“봉사가 무얼 안다고….”
“묵묵쟁도 거저 안 먹어야.”
“점쟁이는 자기 죽을 날도 몰라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네 팔자가 상처를 한다고 하니 마음에 걸려서….”
행동 댁은 판수의 말을 믿고 싶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가시처럼 박혀 불안하고 괴로워서 아들에게 털어놓았다.
“사주팔자가….”
운현은 서당에 다니면서 장난삼아 사주를 보았었다. 그때에 상처를 할 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잊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들먹거리니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다 조물주가 하시는 것이니까.”
행동 댁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참았다.
“오늘은 종일 비가 오려나 보지.”
행동 댁은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죽지 않을 거야. 내가 살려낼 테니까.’
운현은 다짐했다.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댔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다. 빨랫줄에 제비 세 마리가 앉아 빗을 맞고 있었다.
바지랑대 꼭대기에 앉아 있던 제비는 들녘을 향해 날아갔다. 처마 밑 제비둥지에는 며칠 전에 깨어난 새끼들이 짹짹거렸다. 어미는 빗속을 뚫고 날아와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