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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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9
  • 장강뉴스
  • 승인 2025.06.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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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병든 아내

5

행동댁은 개구리를 정성들여 삶은 국물을 사발에 담아 며느리에게 가져갔다. 명약이 되어 끼끗하게 낫아 주기를 기원했다. 건강한 몸으로 아들 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반은 강제로 시킨 결혼이라 자식에게 미안하고 볼 낯이 없었다.

“애야, 일어나라.”

행동댁은 방으로 들어가며 누워있는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젊은 애가 병들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했다. 속았다는 억울함 보다는 가여움이 앞섰다. 한 번한 결혼인데 물릴 수도 없었다. 매정하고 매몰차고 잔인하여 파혼을 강요할 수도 없었다. 부부는 하늘에서 맺어준다는 생각이 들어 갈라서라고도 하지 못했다.

“무어예요?”

금순은 뭉그적거리며 일어났다.

“네 약이다.”

“약이요?”

“네 남편이 새벽같이 나가서 잡아온 개구리를 삶아서 만든 국물이다.”

행동댁은 며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집에서도 많이 먹었는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어서 마셔. 좋은 한약을 함께 달였으니 금방 낫을 거야.”

행동댁은 영절스럽게 말했다. 좋은 약이 들어갔다는 말을 거짓이었다. 믿고 힘을 얻어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담겨있었다.

“…….”

금순은 시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사발을 두 손으로 우대여 들고 반쯤 마시다가 내려놓았다.

“무엇하고 있냐. 다 마셔야지. 네 남편이 뱀을 잡아 뒤란에서 삶고 있다. 어서 나서야 돼.”

행동 댁은 자신의 딸처럼 꾸짖었다.

“어머니 미안해요.”

금순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무어가?”

“그냥….”

금순은 다시 사발을 들고 마셨다. 서럽고 고마워서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몸이나 잘 추슬러라.”

행동 댁은 며느리에게 빈 사발을 받아들고 방을 나왔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달려들어 온 몸을 휘감았다. 동네 뒤 둔덕의 소나무에서는 매미가 시원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제비들은 빨랫줄에 앉아서 조잘거렸다.

6

운현은 품팔이를 가지 않았다. 이틀 동안 정성을 들여 뭉근한 불에 뱀을 고았다. 하루만이라도 아내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 희아리를 넣어 불이 시들지 않도록 여러 시간 지피었다. 땡볕 속에서도 더운 줄을 몰랐다. 매미는 감나무 가지 붙어 시원하게 노래했다. 푹푹 삶는 불볕 때문에 땀을 뻘뻘 흘렸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뱀을 달였다. 해거름이 되어서 단지의 뚜껑을 열었다. 희부옇게 고아진 국물을 대접에 담았다. 아내에게 가져갔다.

“이거 마셔 봐요. 좋은 약이야.”

운현은 뱀을 푹 고아서 가져온 국물을 아내에게 디밀었다.

“이게 무어예요?”

금순은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약이라니까. 약을 먹고 빨리 건강을 되찾아야지.”

“뱀 달인 국물 아니고?”

금순을 얼굴을 찡그렸다.

“뱀을 삶은 국물 맞아. 이것을 먹으면 틀림없이 폐병이 낫는데.”

“징그러워서….”

“징그럽긴? 병을 고쳐주는 좋은 약인데.”

“어제 어머니가 개구리 삶은 국물을 가져와 먹었어.”

“이것은 그것 보다 훨씬 좋은 거야.”

“토할 것 같아 먹기 싫은데.”

금순은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비위가 상해도 억지로 마셔야 돼.”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다. 아내가 먹으려고 하지 않으니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정성을 들였다.

“정말 나슬까?”

“결핵에 걸린 사람들은 비싼 값을 지불하고 일부러 구하여 먹지 않아.”

운현은 사발을 들고 아내의 입으로 가져갔다.

“알았어요. 마실게요.”

금순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억지로 마셨다. 몇 모금을 넘기고 사발을 내려놓았다.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어서 마셔!”

운현은 아내가 마시는 것을 지켜보며 재우쳤다.

“…….”

금순은 눈을 질끈 감으며 그릇을 비웠다. 남편을 바라보았다.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병이 빨리 나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틀림없이 낫을 거야!”

운현은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빈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고마워요. 낫겠지요.”

금순은 방을 나서는 남편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남편을 괴롭히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볼에 맺혀있는 눈물방울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7

운현은 농사철이 되지 않아 배 밭에서 열심히 일했다. 힘에 버거운 하루하루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장손인 자신의 등에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병든 아내, 소아마비인 동생 순조와 어린 세 명의 동생들이 얹어있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했다. 책임이 무거우므로 의무도 커졌다. 회피할 수도 없었다. 방관해서도 안 되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생사를 함께해야 되었다. 동냥아치가 되어도 같이 구걸해야 되었다. 살붙이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살아가야 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요 책무였다.

‘벌써 해거름이 되었구나.’

운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과수원에서 나왔다. 주인이 집에 귀한 손님이 온다고 하여 작업을 일찍 끝냈다. 황혼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터벅터벅 걸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에는 산 까치들이 내려와 앉아서 우짖었다.

“오늘도 뱀이나 한 마리 잡았으면….”

운현은 마을에서 나왔다. 샛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노끈을 만지작거렸다. 뱀이 눈에 띄면 잡으려고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다.

‘아내의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야.’

운현은 아내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얼굴에 화색이 돌아 밝아졌다. 뱀 삶은 국물을 먹고 난 뒤부터 몸이 회복 되었다. 기침은 뜸해졌다. 언제부턴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일을 하였다. 몸에 힘이 넘쳐 밭매기 같은 들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건 구렁이 아니야.”

운현은 지름길로 가기 위해 둔덕을 오르다가 발을 멈추었다. 황구렁이를 보니 머리가 섬뜩했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너 잘 만났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의 약으로 쓸 뱀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렁이 너를 잡아갈 수밖에….’

운현은 마음을 가다듬고 구렁이를 살폈다. 호주머니에서 올무를 꺼내며 두리번거렸다. 달아나는 뱀을 따라갔다. 옆에 있는 기다란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풀숲으로 들어가려는 황구렁이의 머리를 막대기 끝으로 눌렀다. 뱀은 똬리를 틀었다. 조심스럽게 머릿속으로 올가미를 끼어 넣어 묶었다.

“구렁이야 미안하다. 내 아내를 살려다오.”

운현은 노끈을 막대기 끝에 묶었다. 살걸음으로 둔덕을 넘었다. 집으로 향해 달음질을 했다. 노을은 검게 변해가고 했었다. 소나무의 우듬지에서는 멧비둘기가 앉아 구구거리며 짝을 부르고 있었다.

홍인표 소설가
홍인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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