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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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17
  • 장강뉴스
  • 승인 2025.06.1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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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병든 아내

1

석양이 붉은 물감을 칠하여 놓은 것처럼 곱게 물들었다.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땅거미가 대지를 감싸버렸다. 해는 저서 어두워지자 가족들은 보금자리인 오두막을 찾아왔다. 먹을거리는 빈약하지만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밥그릇에는 무를 채 썰어 넣고 지은 꽁보리밥이 반쯤 담겨있었다. 식구들이 모여 이렇게 저녁밥을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보리나 쌀에 고구마, 감자, 도토리, 쑥 같은 다른 것을 혼합하여 식량을 아꼈다. 독성이 없는 식물은 모두 먹을거리로 사용했다. 모진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도적질이나 죄짓는 일을 제외하고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착안하여 사용했다. 자신만 살아남기 위하여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되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운현아, 올 가을에는 장가가거라.”

행동 댁은 밥을 먹다말고 수저를 놓으며 큰아들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건강이 회복 되는가 싶더니 다시 시름시름 앓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 큰아들이라도 결혼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장가요?”

운현은 수저를 놓으며 늙으신 할머니와 병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배가 고파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 어린 동생들이 눈앞에서 아른 거렸다. 소아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긴 순조를 물끄러미 살펴보았다. 병세가 호전되었다.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간신히 걷고 있었다. 조금만 더 좋아지면 지팡이는 버려도 될 것 같았다.

“나이도 찼으니 혼사를 치러야지.”

할머니가 거들었다. 장손손자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저승으로 가고 싶었다.

“나에게 시집 올 처녀가 있을까요?”

운현은 자신이 없어 어눌하게 얼버무렸다. 어느 처녀가 가난하고 식구 많은 장손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다른 친구들은 이미 혼사를 치렀다. 그 사실을 알기에 거절하지도 못했다. 때가 되었으니 아내도 맞아 들여 후손도 낳아야 되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소중한 본능이었다.

“구해보아야지.”

명진은 힘없이 벽에 등받이하며 운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지 않는 걸보니 서둘러야 될 것 같았다. 집안의 장손이기에 서둘러 빨리 장가를 보내고 싶었다. 사실은 남몰래 중매쟁이에게 부탁하여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장가를 가기는 가야 하는지?”

운현은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분명한 사실은 결혼하여 후손을 보아야 되었다. 장손이니 더욱 절박했다.

“나도 알아보마. 손자며느리 보고 죽어야지.”

할머니는 큰손자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증손자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뒷집 할머니가 나주 세지서 사는 황 씨 집안에 괜찮은 처녀가 있다고 하던데….”

행동 댁은 속내를 드러냈다. 며칠 전에 이웃집 세지댁이 중매를 서겠다거 하였다. 처녀 집안도 좋고 마음씨도 다시없고 자랑했었다. 귀가 솔깃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혼처를 다른 데에 빼앗길 것 같아 불안했다.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내일이라도 아무데나 전안청을 차리고 혼례식을 치르고 싶었다.

“처녀도 우리 집안을 알아야 하는데…”

운현은 가난한집 장손며느리로 시집올 처녀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사실대로 알아야 결혼하고 나서도 후유증이 없을 것 같았다.

“처녀 집도 우리 생활과 진배없겠지.”

명진은 아들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버렸다.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고….”

행동 댁은 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남몰래 찾아가 맞선이라도 보게 할 생각이었다. 중요한 것은 아들의 마음이었다.

2

방 안은 적막으로 가득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호롱불은 가물가물 타며 희끄무레한 빛을 뿌려댔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결혼을 시켜야 될까에 대한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이 원하니 장가는 가야 되겠지?’

운현은 흐릿한 불빛 사이로 가족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당장 마땅한 색시가 생길지도 의문이었다. 적당한 처녀가 시집온다고 하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결혼할 준비는 한 가지도 되어있지 않은데…?”

운현은 더듬거리며 침묵을 깨뜨렸다.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집안의 형편을 다시 곱씹었다. 몇 번을 되새김하여 생각해보아도 어려울 것 같았다.

“준비는 무슨 준비냐. 형편과 처지대로 하는 거지.”

명진은 꾸짖었다. 가정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아들이 얄밉기도 했다. 결혼은 자신의 앞날의 문제였다. 혼자서 살 수는 없었다. 홀아비로 살아서도 안 되었다. 집안의 장손이기 더욱 그랬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서 행동해야 되었다.

“신혼생활을 하려면 거처할 방도 있어야하고….”

운현은 고개를 저어댔다. 아내와 함께 생활할 방이 없었다. 두 칸의 지궁스러운 오두막이었다. 기와집은 원하지 않지만 아내와 함께 잠자리를 할 공간은 필요했다.

“까대기로 달아내면 되지.”

명진은 단호했다.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토담을 쌓아서 거처를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거적이라도 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행동댁은 남편에게 헛간 옆에 방 한 칸을 마련하자고 말했었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보았었다.

“결혼 예단과 이바지는?”

“형편대로 하는 거야. 뱁새가 황새걸음 걷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 일제치하인 요사이 지주들을 빼놓고는 모두가 어렵게 살아간다. 상의하여 초례청을 차려놓고 혼사만 치르면 되는 거지 허세 부리서 무엇 하게. 누가 알아주기나 할 것 같으냐. 또 부지깽이 까지 해왔다고 찬사를 들으면 행복하게 잘 산다고 하던? 나라는 일본에게 빼앗겼는데 호화호식하려고?”

“혼사도 때가 있다. 시기를 놓치면 안 돼. 그 나이이면 서둘러야 된다.”

할머니의 마음은 더욱 급했다. 혼처가 나오면 당장에 하자고 재우쳤다.

“결혼하는 거지?”

행동 댁이 다짐을 받았다.

“부모님이 성화인데…. 좋은 처녀가 생기면….”

운현은 쑥스럽기도 하여 어눌하게 말했다. 눈앞에서는 아내가 될 예쁜 아가씨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사람은 생 노 병 사를 하는 거다. 결혼할 때에는 혼사를 치러야 되고 애를 낳을 때에는 낳아서 길러야 되고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야.”

명진은 장손인 운현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루만졌다.

“가정의 형편이 넉넉하다면….”

운현은 고개를 숙였다. 여유롭게 살아간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장가를 보내달라고 스스로 자청했을 것이다.

“알았으니 가서 자거라.”

할머니는 손자며느리를 본 것처럼 반가웠다. 속으로 환하게 웃었다. 증손자를 보게 되면 원풀이를 한 셈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

운현은 방에서 나가려고 일어섰다.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마라!”

명진은 쐬기를 박았다.

“…….”

운현은 수굿이 밖으로 나왔다. 마당을 서성거리며 결혼 후의 삶을 그려보았다. 머리 위에서는 유성이 떨어지며 별똥을 흩뿌렸다.

홍인표 소설가
홍인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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