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최일중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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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최일중 전인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6.05.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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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는 일심동체(一心同體)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보면 삼강에 부위부강(夫爲婦綱)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근본이다.
오륜에 부부유별(夫婦有別)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 부부합이성(夫婦合二姓) 비록 성(姓)은 돌이 합한 하나다.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 부부는 한마음 한 몸뚱이라는 뜻이다. 국가에서 부부의날(5.21)을 제정한 것이다.
결혼하여 자식 낳고 종족 번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주례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로 검은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라는 말을 많이 써왔다.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인간수명 100세 시대를 열어가는 이때 요즘 부부들의 일상은 어떠한지 들어보면 한 마디로 지아비와 지어미의 가정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남과 여의 결합 정도라 해도 때로는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 말은 곧 이성(異性)들이 너무 쉽게 만나기도 하고 헤어짐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예전 같지 않게 남녀가 스스럼없이 교제를 통해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컨셉이 대세다.
그런 과정을 굳이 말한다면 예비부부의 성격도 되겠다. 더 나아가 신혼부부로 인생을 새 출발하고 중년부부의 단계를 지나면 말년에 노부부로 누구든지 남게 된다.
좋아서 만났고 사랑해서 결혼했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늙어서 이제는 더 비켜갈 때 없는 아내와 남편으로서 둘만이 남는다.
배우자를 만나는데 이념과 사상을 배경으로 하진 않았을 것이고 가정을 꾸려 가는데 사랑만으로 행복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며 자식 출가시키고 연금으로 여생을 보내야 하는 자신들이 부부로서의 연과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땅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季)가 있다면 부부의 가슴에는 사 계(季)도 넘을 만큼 울고 웃는 세월이 흘렀을 텐데 남편의 명예와 아내의 양처(良妻)만으로 남거나 기록될 뿐 부부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새겨지거나 새겨 둘만한 것들은 별로 없다.
이는 산업사회 이후 변화된 가정경제에서부터 기인된 것이고 바람직하지만 않은 경쟁사회에서 부터도 출발되었다.
물론 고학력시대에 사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생활상에서도 그 이유는 있다고 본다.
교통과 통신이 고도로 발달된 세상에 그 간격이 좁혀져야 함에도 왜 따로 지속되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법하다.
어차피 한 솥밥 한 이불속의 부부라도 생각과 행동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러려니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특히 남편들은 더 이상의 남의 편이 아닌 아내의 편(여편)이 되기 위해서도 열일을 제쳐놓고 일상 속에서 지속적인 배려를 아끼지 말고 단 한순간이라도 같은 취미를 누릴 수 있는 기대와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키 위해 앞만 보고 무소의 뿔처럼 전진만 할 게 아니라 쉬엄쉬엄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 속에 동지가 아닌 동반자(同伴者)가 되라는 것이고 부부의 한쪽 편에서만 보는 배우자가 아니라 채워주고 보듬어 주는 그래서 늘 감싸 안아주는 배려자(配慮者)가 되자는 것이며 밥상의 메뉴가 같고 쇼핑의 기호가 같으며 레저와 스포츠 문화생활에서도 그 취미가 같아야 진정 100년을 해로하는 부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부부는 친구가 되고 그리되면 있는 벽도 없어지고 늘 가까이 있게 되며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부부라는 공동의 이름을 갖고 살게 될 것이다.
부부는 보이지 않는 계약의 관계일수도 있지만 친구는 우정 말고는 수사와 형용이 필요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라도 제 아무리 사랑하며 산다는 부부도 친구 같은 부부만큼은 못할 것이니 더 늦기 전에 부부는 친구처럼 친구는 부부처럼 살아 갈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도 분명코 더 나아질 것이다. ‘부부는 친구다’라는 말을 명심하고 백년해로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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