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부모와 자식(父母子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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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부모와 자식(父母子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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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1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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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최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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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은 천윤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도록 안내, 조언하는 것이다.

부모의 은중은 아기를 낳아 잉태하는 은혜, 아기를 낳으실 때 고통을 받으신 은혜,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신 은혜, 쓴 것을 삼키시고 단 것은 뱉아서 먹여주신 은혜,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주신 은혜, 젖을 먹여서 길러주신 은혜, 자식을 위해서 악한 업도 지으시는 은혜,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은혜, 열 가지를 꼭 보은하여 주기 바란다.

부모는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어버이 양친이다. 부모 없는 자식 없고 자식 없는 부모 없다. 가끔 운전하다가 보행자 신호 동안에 횡단보도를 미처 다 건너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가 있다. 젊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히 지나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리에서 걸음걸이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보면 애처롭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한 이 후에는 어르신들이 부자연스럽더라도 혼자서 걸어가시는 모습만 봐도 이제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내 어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왜 이리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에서 길들여진 사이라고 표현했다. 길들여지는 일은 사람이 관계를 맺고 서로를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일이다. 시간과 공을 들이면서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길들여지는 첫 번째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다. 그다음엔 떨어진 거리에서 인내심을 갖는 일 또 하나는 상대를 위해 소비한 시간이다. 우리네 삶에서는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태어남과 죽음이 되풀이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태어남과 죽음에 무심하다.

이는 무관심과 인내심도 없고 소비한 시간도 없어 서로에게 길들여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애정과 신뢰 바탕으로 서로 길들여지는 대표적인 사례는 부모와 지식의 관계이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관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수많은 시간을 함께 소비하여 왔기에 길들여진 것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윗사람인 부모가 아랫사람인 자식을 사랑하기는 쉬워도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기는 좀처럼 어려운 상황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치사랑에서 치는 자연스러운 흐름보다는 역류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과 감정은 내리사랑이고 이를 거스리고 역류하는 감정이 치사랑이고 효도인지도 모른다. 내리사랑 자체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너무 자책할 일은 아니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효도가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부모로부터 받은 것의 반의반이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이 우리 자식들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령화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가정의 달에는 누구나 누군가의 부모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자식이다. 누구나 누군가의 아들이자 사위이고 누군가의 딸이자 며느리이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과 한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울 수 있으니 열 자식은 한 부모도 부양하지 못한다, 는 말은 절감하고 있다.

부모를 부양해야 할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첫 번째 세대인 우리들이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길러야 할 내공은 배우자를 힘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불효하지 않고 부모님을 살필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미는 아프지도 않으시고 힘들어하는 것도 없는 줄 알았다. 새벽에 나가, 밤늦도록 고단한 삶을 사시고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7남매를 모두 챙기셨던 어머니,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나도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도는 실천이 어렵다.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워 하면서도 내 자식 생각을 먼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라곤 했다.

세상 부모들이 가장 흔히 하는 말은 너도 자식 키워봐라, 이고 세상 자식들이 가장 흔히 하는 후회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인데 정작 이 두 가지 사이의 간격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숙제이다.

자기 자신보다 잘되는 것은 보고도 유일하게 시샘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는 대상인 존재는 세상에서 자기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임종의 순간에 자식들에게 계속 시간을 무르시며 초인적으로 자정까지 버티다가 아버지의 기일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부모는 죽는 날까지도 자식에게 불편함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자식을 걱정한다. 자식은 하늘인 부모가 계셨기에 이 세상에 존재한다.

별이 저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다. 그 빛을 이토록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스스로 저물어 어두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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