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인생의 재해석(人生再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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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인생의 재해석(人生再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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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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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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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피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 사람만 그 일만 없으면 인생이 확 피어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자신의 인생 걸림돌이 전부 거기에 박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걸림돌에서 멀어지려고 온 힘을 다해 뛰어간다. 때로는 무조건 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당장 멀어지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희망이나 가능성과도 멀어진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물론 황급하게 꼭 피해야 도움이 되거나 살아남는 경우도 있다.

강도를 만나면 싸움이 아닌 삼십육계(三十六計)가 최상책이다. 큰불이 나거나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면 되도록 멀리 피해야 한다.

최악의 선택은 피해 봤자 피할 수 없는 사람이나 상황에서 무리해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해당되는 예를 들면 가족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와 불화가 있어도 피로 맺어진 가족을 버리기는 어렵다.

직장도 상당히 그러하다. 평생직장이라 생각하고 다니다가 어려운 일이 있다고 선뜻 사표를 내기는 힘들다. 섣불리 용단을 내렸다가 후회하는 일도 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좋든 싫든 삶의 의미를 해석하려 하며 바쁘게 살아간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삶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삶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찾아내는 의미에 따라 삶이 크게 달라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고통받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다행히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나 상황이 바꿔 지지는 않아도 재해석은 늘 가능하다.

재해석은 동일 사항에 대해 해석을 달리 새롭게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에 대해 그래도 어려운 시절에 온갖 수모와 곤경을 찾아내며 뼈 빠지게 일해서 가족이 굶지는 않게 했다고 새로운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직장에서 맞이한 곤경을 내가 직장에서 적응력을 키우고 크게 되기 위한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새롭게 의미를 찾는다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재해석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늘 익숙하게 쓰던 마음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어두운 색깔의 렌즈나 모양이 틀어진 렌즈는 비관적으로 변형된 형태로 세상을 읽어낸다. 재해석을 가로막는 막강한 적대세력은 초자아(超自我)이다.

초자아는 마음의 감독관이다. 윤리, 도덕, 이상 등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도구로 삼아 늘 내게 회초리를 휘두른 준비가 되어 있다. 초자아가 너무 경직되고 강하면 자신의 삶이 힘들고, 초자아가 느슨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욕망이 너무 강해도 자아의 조정기능이 너무 약해도 갈등은 마음을 구속한다. 그렇게 사로잡힌 마음은 재해석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갈등의 고리를 풀려면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도피는 재해석의 방해꾼이다. 꼭 몸이 떠나는 것만이 아니다. 마음이 떠나는 것도 도피다.

재해석하려면 직면해야 한다. 몸과 마음으로 부딪치는 직면(直面)의 직접성은 맛이 피처럼 비릿하다. 마음이 약해지면 다시 도피한다.

삶의 유한함 속에서도 도피는 쉽고 직면은 어렵다. 하지만 내 존재 감정과 정체성을 확인하고 튼튼하게 하려면 직면은 피해 갈 수 없다.

재해석은 창의적 작업이다. 내가 내 삶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맞추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핏덩이로 태어난 부모의 눈치를 보며 성장하며 내 정체성을 키워왔다. 정체성이 성숙 되는 혼돈의 청소년기를 거쳐 이제 어른이 되었다면 내 정체성은 내가 지켜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계속 본다면 주유소를 계속 가야만 운행이 가능한 휘발유 차와 같다. 어른이라면 휘발유에 더해 전력도 자체 생산하는 하이브리드 차량 정도는 돼야 한다. 주유소에 덜 의존하고 유지비도 적게 된다.

재해석의 첫 단계는 혼자 있는 공간에서 내 삶을 말로 풀어서 설명해 보는 것이다. 녹음을 글로 옮겨 반복해서 읽어본다. 무슨 내용을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무엇을 빼놓았는지를 파악하면 내 삶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내 삶을 스스로 설명한 바가 합리적인지 왜곡되어 있는지 무리한 설명인지 심지어 떼쓰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나는 내 생각, 감정 행동의 주체가 돼야 한다. 내가 나를 아끼고 생각하지 않으면 험난한 세상의 삶이 더욱 피곤해질 것이다. 그러러면 되피 보다는 직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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