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 입시 문제
상태바
특별칼럼 - 입시 문제
  • 장강뉴스
  • 승인 2023.07.03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균(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
김진균
김진균

정약용(丁若鏞)은 젊은이들이 과거 시험 준비에 매몰되어 올바른 학문의 길을 못 찾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목민심서』 예전(禮典)조에서 수령의 임무로 보아 과거 시험을 권장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서당에서 문자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십팔사략(十八史略), 통감절요(通鑑節要), 백련구(百聯句), 격몽시(擊蒙詩) 등을 읽고 나면 잘못 굳어진 사고 체계를 바로잡을 길이 없다고 한탄한 것이다.

그리하여 뜻있는 수령이라면 자신의 고을에서 열 살 안팎의 어린 수재들을 손수 깊이 있게 교육시켜서 국가에 별도로 천거할 인재로 키워낼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오직 과거 시험만을 대비하기 위해 피상적으로 읽고 기능적으로 배우는 역량은, 조선왕조에 필요한 역량과 무관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시험 제도는 사회 구조의 반영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박은식(朴殷植)은 서간도 망명지에서 저술한 소설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에서 과거제도가 조선왕조 멸망의 한 원인이었음을 상기하며 더 철저한 비판을 제기한다.

“이는 중국 제왕이 천하의 인재를 소멸시킬 야심으로 시행한 것인데, 조선도 이를 흉내 내어 인재를 소멸케 한 것이 800년이란 말인가.”

중국 수나라에서 시작된 과거 시험은 인재들의 정신을 빼앗아 제왕의 권력에 도전하는 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고안된 제도라고 규정하고, 고려와 조선을 이어 그 제도를 타파지 못한 것을 꾸짖었다. 국망을 겪은 세대로서 앞 시대의 비판을 더욱 극단화한 것이다.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도입한 과거 제도가 세습 귀족의 기득권을 해체하는 데에 전혀 무용했으며 시험을 준비하며 얻는 지식이 전혀 무익했으랴만, 잘못된 사회 구조의 재생산 도구로 활용되면 무익을 넘어 해악을 끼치게 된다.

특히 조선후기의 과거제도는 온갖 부정을 통해 권력 세습의 방편으로 활용되면서 왕조사회를 더욱 부패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였다.

시험을 통해 합격자를 골라내는 일 자체는 공정할 수 있다는 착각이 횡행하지만, 어떠한 시험 제도도 사회 구조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회 구조의 개혁 없는 공교육 강화는 공염불

올해 6월 1일 실시한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에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대통령의 질타가 나온 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교체되었고, 교육부 차관은 출제를 관장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감사할 예정임을 발표하고 곧이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했으며, 쟁점이 된 문항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되자 교육부 장관은 쟁점이 되고 있는 킬러 문항을 공개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이다.

유명 대입 강사들은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는다면 변별력이 없어서 대입 과정에 대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반발했고, 대통령실은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지적하고 나섰다.

대학진학률이 74%에 이르는 현실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여론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으며, 시험 시간 내에 도저히 읽을 수 없을 분량의 지문을 제시하거나 지정된 학습 범위를 초과하는 고급 지식을 요구하는 소위 킬러 문항의 출제 의도를 따지는 것은 공교육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행정부 수반이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준킬러 문항이라는 상품을 개발하여 선전하는 사교육 자본의 발빠른 움직임을 보면, 대통령의 질타가 공교육 정상화의 목표를 제대로 겨냥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수능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사교육 이권 카르텔에 돈을 더 지불해야 할지 수험생들만 난감해진 셈이다.

대학 입시에 집중된 관심은 고등교육의 무력함과 대물림의 사회 구조를 외면하게 만드는 데에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지금은 대학에서 어떻게 배웠느냐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졸업했느냐가 학생의 미래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학 입시에 자신과 가족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것이 개인의 차원에서 가장 합리적 행동이라고 믿게 된다. 서울대 신입생 중에 강남 출신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은 그런 신념이 빚어낸 비합리적 결과물이며, 사교육이 이 틈에 이권 카르텔로까지 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 세대의 양극화가 더 심화되어 대물림되는 사회를 개혁할 의지도 없고, 순위에 따라 입학한 학생들을 순위대로 졸업시켜 놓는 무기력한 고등교육을 혁신할 전망도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입시 문제로 정신을 빼앗는 일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