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마음의 관찰(觀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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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마음의 관찰(觀察)
  • 장강뉴스
  • 승인 2021.09.0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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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사람의 마음은 지(智), 정(精), 의(意)의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상대의 총체, 감정을 말한다.

최일중
최일중

시비선악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정신활동, 사려(思慮)분별을 뜻한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속으로 가지는 생각, 본심을 마음이라 본다.

마음은 형상이 없다. 신은 영(靈)이며 혼(魂)은 생명이다. 신이 떠나도 혼이 있으면 살아 숨쉬게 된다. 영과 혼이 두 가지 다 떠나면 죽는다.

그러나 육체가 죽어도 영은 살아있게 된다. 사람이 종교를 알지 못하면 신은 알 수 없다. 그것이 곧, 양심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善) 악(惡)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는 사전적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양심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경쟁하듯 살아가는 생활환경으로 인해 양심은 거의 자취를 감춰버린 듯하다.

어린 사람들은 덜하더라도 나이든 사람들은 더한 것 같다. 양심에 걸리는 일이라도 거리낌이 없다.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양심이 무엇인지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행하는 것은 이미 자기 양심이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젊어서 그만큼 돈을 벌었으니 나이든 사람이 돈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 한다.

사람은 양심이 다 있는 것인데, 양심이 없는 사람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겨야 해’라는 이기주의와 경쟁심 때문에 우리는 양심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몇 사람이 모인 사석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게 무엇일까?” 돌발적인 질문에 사람들은 잠시 궁리하는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한가지씩 가장 다루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돈, 와이프, 자식, 시간, 인생 ...” 그러자,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 모든 것이다” 정답이라고 대답했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째서 그것들이 다 정답일 수 있느냐”고 따저 물었다.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방금 여러분이 대답한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요컨대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이 마음이라는 전언이었다.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면벽 수행을 하던 어느 날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말했다. “스승님, 저는 아직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에 대사가 짧게 응대했다.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신광이 참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음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달마대사가 담백한 어조로 마무리했다.

“나는 이미 너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었느니라” 그 순간 신광은 크게 깨쳤는데, 그가 훗날 달마의 법을 이은 중국 선종의 2조 혜가(慧可)대사다. 찾을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고생하고 번뇌하기는 무지한 중생이나, 수도승이나 다를 바가 없다.

마음이 어디에 머물다가 어떻게 움직이기 시작해 어떤 소용돌이를 이루고 어떤 경로를 거쳐 다시 잠잠해지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것에 부대끼고 시달리며 숱한 인생의 굴곡을 경험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련하기 위해 명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상담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고 자폐가 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갈가리 찢겨 정신이 분열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의 단절 욕구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만사가 마음에서 시작되고 마음에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마음을 도외시하고는 인생을 영위하기 어렵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매 순간 마음의 변화를 경험한다. 그것의 파노라마가 기억에 각인되어 인생의 씨줄과 날줄을 형성한다.

마음이 조성하는 희노애락으로 인생의 다채로운 무늬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사랑방으로 연결되어 풍요로운 인간 세상을 만들어 낸다.

마음을 제대로 알고 활용할 수 있다면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마음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마음과 자신이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덫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면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타인의 시선으로 관찰해야 한다.

화를 내는 마음, 탐욕스러운 마음, 질투하는 마음, 좌절하는 마음을 객관적으로 주시하면 그것은 빠르게 불길이 잡히고 오래잖아 가라 않는다.

옹졸한 마음은 옹졸한 마음을 낳지만 한번 열리기 시작한 마음은 무변광대한 우주의 마음을 낳는다. 마음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마음이 열린다는 것, 집착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다.

마음은 곧 양심 때문에 망설인 일들이 있다. 길을 걷다가 만원짜리 지폐를 발견하고는 주을까 말까 고민하다 보는 눈이 있을까 그냥 지나가 버린 일,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횡단을 하기가 머쓱해서 횡단보도로 건넜던 일, 새벽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금반지를 주워 용돈을 하려고 전당포에 갔다가 양심에 걸려 주운 자리에 안내문을 붙여 주인을 찾아 주었던 일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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