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보림사 일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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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보림사 일선스님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5.07.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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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구포 제다법과 보림사

그 동안 가뭄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된 가뭄으로 웃녁 산골 절에서는 식수가 고갈되고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 논을 바라보면서 하늘만 쳐다보던 농부들의 양처럼 순한 눈에도 어느덧 물기가 어립니다. 한편 하안거 수행으로 긴장되어 머리를 치고 눈을 충혈시켰던 수행자들의 몸에도 타는듯한 열기가 내리고 온몸이 청량해 집니다.
세상은 고해로써 마치 불난 집과 같으나 어리섞은 중생들은 어린아이가 장난감에 놀아나듯 나오지 못하고 불에 타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불보살님들은 마치 친자식처럼 자비의 방편을 베풀어 불난집에서 어서 뛰쳐 나오라고 하지만 재미에 빠진 중생들은 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타서 죽습니다.
요즈음 메르스로 인한 치솟는 열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직 생사의 공포가 남아있음에 수행의 미진함을 절감합니다. 경허선사는 어느날 스승을 찾아가면서 경기도 지방에 이르러 전염병을 목도하고 그동안 익혔던 경전의 지식들은 생사의 현장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함을 실감하고 동학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모든 경전을 불태우고 가르치던 학인들마저 해산하여 스스로 독방에 들어가 턱밑에 날카로운 송곳을 바치고 면벽에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은산철벽의 화두를 타파하고 윤회의 쇠사슬을 끊어버린 통쾌한 깨달음을 성취하였습니다. 이렇듯 눈앞에 닥친 생사의 공포를 발심의 계기로 삼으면 생사 그대로가 열반으로 영원한 자유인이 됨을 증명하였습니다.
보름전에 송광사 조계총림에서 열렸던 차에 관한 학술세미나는 가뭄과 메르스로 인해 생사가 목전에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상황에서 한줄기 감로수와도 같았습니다. 그간 계속되고 있는 가뭄과 유행인 메르스의 공포로 부터 오는 위축된 몸과 마음을 한잔의 차를 통해서 가볍게 하니 차의 덕이 참으로 후덕하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소승은 보림사에 주지로 부임한지 삼년째로 처음 올때는 수행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녹차를 많이 마셔서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스님들 사이에는 이구동성으로 작설차를 많이 마시면 속이 냉해져서 좋지 않다는 말이 있었지만 아리송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림사에 온 이후로는 여름에도 열탕으로 차를 마신 덕분에 지금은 더없이 가볍고 건강합니다.
보림사는 구산선문의 종찰로써 차와 선수행의 문화가 함께하는 선차일여의 근본 도량입니다. 그래서 좋은 차를 만들어야 겠다는 원력으로 정진을 하였습니다.
처음엔 사하촌 사람들 가운데 삼십여년을 차를 만든 경험을 빌렸지만 차가 풋내가 나고 기운이 없어 다음엔 젊은 사람가운데 현대적인 제다법을 익힌 사람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차가 너무 써서 제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지금은 거사님으로 계시지만 육이오전에 보림사 주지를 하셨던 고당 조성우 거사님을 초빙하여 차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거사님은 스스로 해남 대흥사 차맥을 이은 응송스님 제자라고 하시면서 차가 열탕에도 쓴 맛이 나지 않도록 구중구포를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열탕으로 마셔야 속이 냉하지 않아 좋다고 하시면서 이것이 전통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백양사 방장으로 계셨던 수산큰스님을 시봉하였던 도반스님은 선사의 열탕법을 배워서 그 동안 차를 대접해 주었지만 이제사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차맛을 제되로 낼려면 찻물을 식혀서 차를 우려내야 한다는 것이 상식으로 내려오고 있어서 쉽게 수긍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맛을 살리고 속도 편한 방법을 연구한 끝에 차를 구중구포로 덖어야 뜨거운 열탕에서도 차맛이 쓰지 않고 단맛이 나고 속도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차인들의 의견이 분분해서 확신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열린 송광사 학술 세미나에서 원명스님의 증언과 연해적전스님의 열탕법의 내력을 보고 마침내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유원의 임하필기에는 보림사 대밭의 차는 열수 정약용이 체득하여 절의 승려에게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청태전의 원조인 보림사 떡차의 방법이라고 하는데 떡차는 굳이 아홉 번을 찔 필요가 없으니 녹차를 말함에 틀림이 없습니다.
녹차를 덖다가 보면 일곱 번 정도에서도 좋은 차맛이 나지만 열탕을 할려면 아홉 번 정도 덖어야 처음 차맛과 마지막 차맛이 한결 같은 단맛으로 끝이 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중구포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효차의 맛도 나지만 맑고 청량한 기운은 발효차를 능가합니다. 이것 또한 색다른 경험입니다.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말처럼 중생의 뜨거운 번뇌는 열탕으로 다린 차 한잔으로 족합니다. 한 생각 번뇌가 일어나면 싸우지 말고 즉시 깨달아 쉬어버리면 가벼워 짐니다. 그러나 아직 수행력이 부족한 사람은 싸우게 되고 열이 솟구쳐서 화두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바로 열탕으로 우려낸 차를 도반 삼아 차의 향기와 색깔 맛을 따라가지 말고 화두의정으로 돌이키는 반야행을 실천 하십시오. 그러면 불난 세상을 능히 다스려 번뇌즉 보리의 청량한 기운으로 반야 무심차가 됩니다.
이제 시작인 장마철을 잘 보내고 올 여름 더위를 이기려면 열탕으로 우려낸 반야무심차가 최고입니다. 올 여름을 태평하게 보내시길 두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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