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13 -안동 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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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13 -안동 권씨
  • 장강뉴스
  • 승인 2019.03.0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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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한국성씨본존회 위원)

〈37〉 安東 權氏(안동 권씨)

始祖 權幸(시조 권행)

시조 권행은 신라 김씨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이다. 그러나 그의 상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는 신라 말엽 고창군수를 지키고 있던 중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토벌할 때에 열세한 왕건군을 도와 큰 공을 세우고 고려건국에 수훈을 세워 왕건은 그를 김씨에서 권씨로 사성하고 고창군을 식읍으로 하사 하였다.

그 후 고려 때 지명이 안동부로 개정됨에 따라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공은 능히 헤아림에 밝고 권토에 통달하다고 왕건이 권행을 칭찬했다”고 ‘성화보’에 기록돼 있다. 그는 고려의 통일성업에 기여한 공로로 삼한벽상삼중대광에 오르고 아부공신으로 왕건의 총애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태사에 제수되었다.

안동권씨는 10세 권수중이 종파인 수중공파를 비롯하여 권시중의 부호장공파, 권수평이 추밀공파, 권수홍이 복야공파, 권체달이 동정공파, 권지정이 좌윤공파, 권영정이 별장공파, 권통의가 부정공파, 권인가가 시중공파, 권숙원이 중윤공파, 권사발이 군기감공파, 권대의가 광석공파, 권추가 호장공파, 권척이 검교공파, 권형윤이 급사중공파 등 14개 공파로 이루어졌다.

한편 조선조에 상신 41명, 공신 87명, 대제학 6명, 봉군 720명 등이 배출됐다.

안동권씨는 사시를 가지고 있는 영예와 긍지가 대단하다. 즉 우리나라 씨족 사상 최초로 대동보인 성화보를 편찬하였고 조선조 왕실교육기관인 호당에 첫 번째로 추발되었으며 정이품 이상의 문신들의 모임인 기영회에 첫 번째로 등재되었다.

안동권씨는 고려 때 청백리로 유명한 권수평을 비롯하여 조선 문종 왕비인 현덕 왕후, 태종조의 명상 권근, 세조조의 좌익공신 정난공신인 권람, 생육신의 한 명인 권절,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을 이끈 선무공신 권율장군이 있다.

구한말 애국지사로는 한일합방이 되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중학교를 설립하고 대종교에 입교하여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살해된 권기일,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권병덕과 권동진,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졸업 의열단 활동을 하다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정부의 북벌전에 참전하고 독립군 간부 양성과 광복군 5지대장을 역임한 권준, 권용일과 권종해 등이 있다.

다시 시조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창을 수호하고 견훤을 토벌한 생민지조로 벌문의 기시조인 권행은 안동권문의 주춧돌을 이뤘고 고려조 추밀원부사를 역임한 10세손 권수평 대 이후 조선조에 이르러 더욱 왕성해진 벌력은 전성의 극치를 이루게 되었다.

태종조 좌명공신 권근과 성종조 좌리공신 권감, 선조조 선무공신으로서 존망의 위기에 놓였던 국운의 회복에 간성을 이룬 충장공 권율의 충의는 만고의 귀감으로 추앙받고 있다

한편 약관 18세에 문과 등제 후 고려 충선왕조에 첨의 정승 관총부사 영도첨의사사에 올랐고 추성익조 동덕보리공신으로 영가부원군에 책봉된 문정공 권보는 치사 후에도 한결같은 충신의 도리를 지켰고 주자사서집주 편찬을 주도 우리나라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유신정통을 숭배하였다. 그의 다섯 아들 권준, 권종정, 권고, 권후와 권겸을 비롯하여 사위 이제현 종실인 권숙, 권순 등 5자3혼이 모두 봉군받아 1가 9봉군으로 당대 최고의 가세를 만천하에 떨쳤다.

특히 고려 충선왕조에서 공민왕조에 이르는 6조를 섬긴 명신으로 대언을 거쳐 찬성사에 이른 권준, 상서좌복야 역임 후 상장군을 지낸 권수홍, 문하평장사 권한유, 상서좌복야 권윤평, 전법관서로서 단성명량찬화공신에 오른 권계용 등이 고려조 명신들로 유명하다.

조선 초기 예문관제학 권우, 태종조 형조판서와 세종조 우의정을 지낸 권진, 대사성 권채, 세조조 우·좌의정을 지낸 권람, 순조조 대과급제 후 헌종조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거쳐 우·좌의정에서 영의정에 까지 벼슬이 오른 권돈인 등이 유명하다.

안동권문에서는 민족문화 중흥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는 바 동고 권중화는 권희와 함게 기영회를 설립한 인물로 태종때 영의정에 오르고 예천백에 봉해졌으며 왕명에 의해 동국제현비록을 편찬하였다. 양촌 권근은 찬성사를 거쳐 대제학에 올랐는데 그는 경학에도 밝았으며 ‘입학도설’ ‘양촌집’, ‘오경천견록’, ‘사서오경구결’, ‘동현사략’ 등 명저를 남겼다.

또한 양촌의 아들 권제는 국문학상 중요시되는 ‘용비어천가’를 정인지와 함께 편찬한 데 이어 ‘역대세년가’, ‘영가연괴집’, ‘고려사학’ 등을 저술했다.

예문관제학을 지낸 권우의 아들 권채는 유명한 ‘경약집성방’을 편찬하여 동의학의 체계를 수립해 국민건강향상에 공헌했고 공조판서를 지낸 권찬은 ‘의방유취’를 남겨 의학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인구: 서울 120,506, 경기 76,944, 강원 31,282, 충북 23,116, 충남 29,173, 대구 46,693, 경북 105,326, 경남 42,406, 부산 45,688, 전북 20,191, 전남 15,789, 제주 1,489  
계 558,603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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