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8 - 청주 곽씨~현풍(포산) 곽씨
상태바
한국의 성(姓)씨 알아보기 8 - 청주 곽씨~현풍(포산) 곽씨
  • 장강뉴스
  • 승인 2019.01.11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일중(한국성씨본존회 위원)

〈24〉 淸州 郭氏(청주 곽씨)

始祖 郭祥(시조 곽상)

신라 헌강왕(憲康王) 때 시중(侍中)을 지낸 곽상(郭祥)을 시조로 하는 귀화성씨이다. 중국 주의 문왕 동생의 후손 중 록왕?이 분양에서 살았는데 그 후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했다고 전하니 고증할 길이 없다.

청주곽씨 대동보에 의하면 곽상은 문장에도 능하여 문창후, 최치원과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중시조는 4세 곽원인데 고려 성종에서 현종 때까지 형부상서를 역임했으며 시호는 문성공이다.

청렴강직한 성품으로 참지정사와 대성의 중임을 거듭했다. 고려 예종의 스승이자 형부상서와 참지정사를 역임한 곽상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곽탄은 명성이 높은 현신이고 차남 곽여 또한 예종의 총애가 지극했다고 한다.

전주사록을 거쳐 예빈주부 겸 직한림원 우부승지 동지공거를 역임하였고 성절사로 중국을 다녀온 11세 곽예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의정부 도진시장을 역임한 장남 곽운룡, 차남이 교서랑 곽운진이다. 이들 형제에 의하여 곽씨는 두 파로 분파했으며 13세 곽연중이 충정왕 2년에 청원군에 봉해지면서 청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전법판서를 역임했으며 시호는 충헌공(忠獻公)이다.

장원공 곽린은 서장관으로 선유정사를 따라 일본에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충신이며 15세 곽추는 예문관직제학 밀직사사 대성 등을 역임하고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에 은거 이성계의 부름을 거절하는 불사이군의 충절로 유명하다. 외적으로부터 위기에 처한 조국을 수호하는데 진충위국의 충혼을 보인 인물도 많다. 곽충보는 우왕 9년 왜구를 물리쳤으며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운 후 상의중추원사와 도충제를 역임하였고 곽수인, 곽희겸, 곽수지는 임진왜란 때 왜적 격퇴에 공이 컸다.

최근에 이르러 기미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하여 김원봉 등과 의열단을 조직하고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1920년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곽재기 의사 등은 모두 청주곽문이 자랑하는 선열들이다. 곽재기는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인구: 서울 6,572, 경기 4,585, 강원 1,461, 충북 2,219, 충남 3,374, 대구 751, 전북 725, 전남 1,873, 경북 776, 경남 960, 부산 1,013, 제주 144 계 24,453명

〈25〉 海美 州 郭氏(해미 주 곽씨)

始祖 郭繩(시조 곽승)

시조 곽승(郭繩)은 현풍 곽씨 시조 곽경의 13세손이며 조선조에 교수를 역임했다고 한다.

그후 후손들이 해미를 본관으로 삼고 세계를 이어왔으나 1976년 병진대동보 편찬 때 현풍곽씨로 통합되었다.

해미는 충남 서산군에 있는 지명으로 정해, 여미, 두 현을 합한 이름이다.

한편 좌랑 곽기수 또는 장령 곽성구를 시조로 하고 문헌도 있다. 1985년 당시 전체인구 799명이 나타났다.

〈26〉 玄風(苞山) 郭氏(현풍(포산) 곽씨)

始祖 郭鏡(시조 곽경)

중국 관서의 홍농 사람으로 송(宋)나라 문연각 한학사였던 곽경을 시조로 한다. 그는 고려 인종 11년 7명의 학사들과 함께 고려에 귀화하여 관직에 나아가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냈고 금자광록대부에 올라 포산군에 봉해졌다.

포산은 조선조에 현풍현으로 개칭되면서 현풍곽씨의 본관으로 변경했으며 선산, 해미, 의성, 강릉 등 본관을 가진 곽씨가 있으나 모두 현풍에서 분적된 것이다.

현풍곽씨는 11세조까지 개성을 중심으로 정착했으나 조선조에 들어와 기호계 45파 영남계 33파로 되어있다.

현풍곽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덕가문으로 알려져 일문삼강과 현곽팔주로 명성이 높다. 조선조에 정려가 12개나 되어 충신, 효자, 열녀가 대를 잇고 있다.

현곽팔주라 함은 청백리이자 익산군수를 역임한 곽안방의 현손인 주(主)자 항렬의 8형제중 월, 준, 율 등 3형제가 특히 뛰어났고 이들은 대부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적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3형제 중 곽준은 안음현감으로 재직하다가 임진왜란을 만나 호남의 황석산성을 사수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는데 이때 두 아들인 곽이상, 곽이후는 부친이 군왕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어찌 자식으로서 부친을 위해 죽지 않겠는가 하며 나아가 싸우다 전사했다. 그러자 딸과 며느리도 스스로 목매어 죽으니 곧 충(忠)이 부사(父死)하고 효(孝)에 자사(子死)하며 열(烈)에 부사(婦死)함으로써 일문삼강(一門三綱)을 이룬 가문이 된 것이다.

곽준의 형이 곽원인데 그는 특히 활을 잘 쏘았으며 그의 아들이 홍의장군 곽재우이다. 경남 의령에서 황해감사 곽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그는 진주대첩에 수훈을 세운 영걸이며 문집으로 망우당집이 있다.

▲인구: 서울 27,802, 경기 15,418, 강원 3,634, 충북 4,335, 충남 17,226, 대구 10,300, 경북 9,272, 경남 13,824, 부산 13,349, 전북 6,706, 전남 14,254, 제주 532 계 136,65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