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인공 17 - 강진군 최고령 양치중 관광해설사
상태바
당신이 주인공 17 - 강진군 최고령 양치중 관광해설사
  • 조창구 기자
  • 승인 2017.05.22 1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향 알리기에 앞장서온 강진군 최고령 관광해설사이며 시인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온 그. ‘공 것 없는 세상’ 느껴

▲ 양치중 선생이 관광객들에게 영랑생가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무슨 욕심이 있어서 할까라는 오해살까봐 걱정도 되지만 돈 죽어서 가져갈 것도 아니고 금액을 떠나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네” 먼저 강진군 최고령 관광해설사라는 것 때문에 활동이유에 대한 설명부터 한다. 일흔일곱의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고 강진지역의 관광지를 알리느라 바쁜 양치중 전라남도지정 관광해설사.
낯선 관광지에 가서 관광해설사의 설명은 어렵지 않게 관광지의 역사와 사연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주말이면 강진지역관광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양 해설사는 평일보다는 주로 토·일 주말에 강진관내 청자박물관, 병영성, 백련사, 무위사, 다산초당, 영랑생가 등의 관광지를 돌며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평일에는 초등학교 방과후 한자지도도 해주고 있는가 하면 틈틈이 텃밭을 일구며 시간을 알뜰히 보내고 있다.
▲ 양치중 선생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쉰여덟살이던 2004년 군청홈페이지를 보고 관광해설사 양성 교육 있다고 해 문의했다 나이제한 없다고 해 시작하게 됐다. 1년 교육받고 테스트 거쳐 해설가 인증을 받아 하게 된 것이 벌써 12년이 넘고 있다. 초창기에는 청자박물관에서 해설 활동을 주로 했다. 1964년 청자도요지 발굴당시 대구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가까워 관심 가졌었던 인연으로 좀 더 자신있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제 했지만 오늘 또 시작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마지막하는 일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는 양 해설사. 관광안내와 해설을 하다보니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반응이 좋을 때가 제일 기분 좋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간혹 설명을 듣다가 뒤로 고개를 돌려 눈물 닦고는 나중에 설명 감사하다며 건강히 오래 살고 더 좋은 얘기 부탁한다는 관광객도 있었다고.
비록 젊은 사람만큼의 체력은 안되지만 건강만 괜찮다면 계속 해볼 생각이다. 아내인 공영자(72)여사의 응원도 큰 힘이 된다.
▲ 양치중 선생이 관광객들에게 관내 사찰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후회는 없다는 양치중 해설사. 독자로 태어나 10살에 아버님을 여의고 몸이 약하신 어머님과 두 분의 할머니에 누이까지 일찍부터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대구면사무소 출장중 3m 언덕아래로 넘어져 늑막염을 앓아 폐병 3기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죽고싶다는 생각도 여러 차례 들었지만 꿋꿋이 버텨나갔다. 그러다보니 젊은 나이에 폐병을 앓고 있는데도 시집와준 아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공여사와의 사이에 5남매의 자녀를 두고 있다. 비록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자녀들도 부모를 본 따 열심히 해 학원 한 번 안가고도 공직자의 길을 헤쳐나가고 있어 대견하다고 한다.
당시 장모님이 사위감으로 생각한 양 해설사가 몸은 아프지만 마음씨가 착하니 ‘죽고살고는 지 운명이고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 같다’고 딸을 시집보내려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 헤아려준 장모님께 감사하며 ‘잘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먹고 살아왔다고.
아내인 공여사도 없는 돈 쪼개가며 가계부 작성할 정도로 알뜰하게 남편을 내조해온 내조의 여왕이라고 은근히 자랑한다.
▲ 양치중 선생이 학생들에게 한자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7년간의 공무원생활 퇴직후 김대중정부시절 면단위 신문지국이 구조조정하기 전까지 한국일보 대구지국을 28년간이나 운영했다. 면단위지국이었지만 강진지국장 임명 좌우할 정도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청자의 주산지였던 고향에 살다보니 무엇보다 청자와 관련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양 해설사는 청자축제에 1회용이 아닌 고정시설을 건의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양 해설사는 청자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린이부터 교수까지 참여폭을 다양화 할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98년에 시인으로 등단한 양 해설사는 ‘천년을 나는 학’과 ‘하얀 봄꽃 피는 날’ 등 2권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시는 물질이나 육체를 떠난 영혼의 세계이자 생활의 표현이기도 하며 고뇌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독자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말하는 양치중 해설사겸 시인은 “그동안 간절한 기도의 마음으로 순수하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순수함 속에서 탄생한 시. 삶 자체가 시인의 태도였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양 해설사는 살아보니 “세상에는 공 것이 없더라. 그렇다고 영원히 내것도 없더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틈틈이 작품활동도 하면서 지역문화유산이 많은 강진군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만큼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다”고 한다.

▲ 양치중 선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