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불효자(不孝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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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불효자(不孝子)는 웁니다
  • 장강뉴스
  • 승인 2022.09.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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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부생아신(父生我身), 아버지께서 내 몸을 낳게 하시고, 모국오신(母鞠吾身), 어머니께서 내 몸을 기르셨도다.

최일중
최일중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탄생시켜주신 가장 존귀한 분으로 부모님처럼 고마우신 분은 없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라 뉘우시면서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시며 희생하신 분이다.

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부자자효(父慈子孝)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이다.

조선조 정철은 자효(子孝)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지요.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길 일을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 할이 이뿐인가 하노라』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죽은 뒤에 뉘우친다.

어머니는 배가 골아도 자식부터 먹인다. 부모 자식 사랑이다.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인생이다.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불효한 자식, 부모님을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부모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고 통고해요. 다시 못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에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 세상에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님. 많은 사람들이 알고 부르는 ‘불효자는 웁니다’ 노랫말이다.

바야월이라는 예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은 논외로 치자. 다른 예명인 진방남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녹음할 당시 아들을 위해 온몸을 내 던진 어머니의 상을 당한 슬픔까지 배어 있는 노래란다.

모든 자녀들은 어버이 앞에 원천적으로 불효자다. 아무리 해도 자식들의 효성으로는 어버이의 사랑을 당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뒷바라지하신 고향(시골)에 계신 가난한 부모를 둔 자식들의 경우는 더욱 각별하다. 어버이 고향 산천은 한 맥락에 있는 동심체이다.

그러기에 명절이 되면 기를 쓰고 가서 만나야 하는 한몸 공동체다. 그때를 놓치면 자식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원천적으로 효도가 부족한데 찾아뵙지 못하는 것은 불효자임을 확연히 드러내는 일이다.

1년에 설, 추석, 부모(父母)님 생신 정도는 찾아뵙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 본다.

그런데 추석명절을 맞아 고향 찾아가 넉넉하고 풍성한 감정과 감성이 충전을 고대하였으나 어이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효자는 웁니다며 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효자는 못되어도 불효자는 안되려는 가륵한 마음(?)에 어처구니없는 주저앉아 류큰 시인의 아들딸을 향한 유언의 시를 읽어본다.

『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빼앗기지 말아라/빼앗기면 천배 백배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비겁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부끄러운 것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양심과 선의는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패배자들을 경멸하고 혐오해라/너에게 기회와 이득이 되는 사람에게 잘 보여라/앞에서 못 이기면 뒤에서 찔러라/지지 말아라/이기고 짓밟고 넘어서고 보아라/무슨 수를 써서도 비싼 밥 먹고 비싼 잠자라/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라/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오직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산업사회 자본 사회 크고 많고 빠르고 높은 것을 추구하다 보니 남는 것은 피로요 불안과 두려움 소외와 배제로 인한 우울뿐이다. 그런데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즉 나 하나만 잘 살면 된다는 마음을 독하게 품지 않으면 도무지 살길이 없어 보이는 시대를 살아가는 일은 참 슬프고 아프고 가혹하다.

고향 추석 부모님 가족 등은 말 뿌리가 다르고 생김이나 뜻도 다르지만 같은 범주 안에 있다.

그 지향하는 바가 작고 적고 느리고 낮아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불효자는 그냥 울지만, 효자는 속으로 꺼이꺼이 운다.

계신 고향이 추석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더 잘 효도하지 못해서 속 깊은 울음을 울게 되는 것이다. 불효자는 추석에만 오지만 효자는 평소에 온다.

몸으로 올 수 없기에 전화로 편지로 마음으로 밤낮없이 문턱이 달도록 찾게 되는 것이다. 그 울음 속에 그 찾아옴 속에 우리의 고향이 부모가 가족이 추석이 한 몸 공동체로 스며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불효자는 오늘도 울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길렀지만, 자식의 목숨은 부모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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