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장흥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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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장흥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⑫
  • 장강뉴스
  • 승인 2022.03.1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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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장흥군 유치면 덕산마을

장흥군은 현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한국전쟁 전후 장흥에서 벌어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 조사·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라 진실규명신청서를 작성하여 관계 기관에 접수한다. 이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기록팀은 본지 지면에 이 아픈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

장흥댐 수몰 전 유치면 덕산마을
장흥댐 수몰 전 유치면 덕산마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장흥군 유치면 덕산마을

오늘 헛헛하여 낮술 한 잔 했다. 한국전쟁 불바다 폐허 속에서 다시 삶을 붙잡고 사랑을 하며 마을을 일군 장흥군 유치면 사람들 얘기를 하고 싶다. 고향이라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지금은 장흥댐이 들어서며 영영 걸어 들어갈 수 없다. 마동욱 선배가 그 옛 사진들을 꺼내놓았다. 2002년 우리는 그때 너무나 젊었다.

아홉 살 소년이 보고 들은 덕산마을 한국전쟁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장흥군 유치면 덕산마을은 100여 가구가 훨씬 넘게 살던 큰 마을이었다. 그 속에는 큰 기와집이 두 채 있었다. 한집은 천석꿍(꾼) 문계태 집안이고, 또 한집은 삼백석 문계홍 집안이었다.

전쟁 통에 유치지서가 불타자 문계태의 기와집을 뜯어다 다시 지서를 지었다. 덕산마을은 대다수가 임진왜란 의병장 문위세 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남평문씨 집성촌이었다.

겸재(謙齋) 문계태(文桂泰, 1875~1955, 유치면 덕산리)는 조선 후기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산 선비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천석을 하는 대지주로 은밀히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전달했다. 그가 지은 ‘덕강구곡가(德岡九曲歌)’는 덕산마을 주위의 경치에 비유하여 나라 잃은 설움을 표현하고 있다.

문계태의 형 문계홍은 일제강점기 마을구장을 했고, 장손 문우열은 농민의 권익을 주장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문우열은 1934년 독립운동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른 공적으로 2022년 3.1절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덕산마을에서 이 두 집안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1950년 인공 당시 아홉 살이던 문재명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른바 ‘인민재판’을 뚜렷하게 기억했다.

“여순반란 잔당들이 덕산마을 뒤에 호를 파고 주둔했어. 큰 기와집이 있고 먹을 것이 많아서 한 때는 인민군과 빨치산 부대 500여명이 주둔하고 있었지. 저녁에 마을에 내려와 어느 집을 뒤지닌까 냄비가 하나 나왔어. 그런데 집주인 아줌마가 몰래 구멍 뚫린 냄비로 바꿔놓은 거야. 빨치산들이 밥을 못해 묵고 하루 내 쫄쫄 굶은 거야. 그래서 반동으로 몰렸지.

2002년 8월 수몰문화제(소리꾼 김효정)
2002년 8월 수몰문화제(소리꾼 김효정)

 

또 한집을 뒤지니 목화가 가득 담겨있는 항아리가 많이 있어. 그 안에 쌀을 숨겨놓은 거야. 그래서 또 이 가족도 반동으로 몰렸지. 이 가족은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노무현 정부 때)을 했던 김세옥의 고모집안이야. 그래서 한 집안에 네 명씩 모두 여덟 명이 반월 금곡 골짜기에서 죽게 돼. 아주 잔인하게 돌로 때려 죽였다고 해.

그리고 지주라 해서 문계태 집안사람들도 인민재판을 받고 끌려가 죽게 되었어. 그런데 1946년 신탁통치를 두고 찬반으로 좌우익 투쟁이 한참이던 때 광주서중학교(광주일고)를 다니면서 신탁을 찬성하던 손자 문00가 있었어. 동기생이던 이양우(전 전남교육감) 등 일곱 명과 함께 서중학교를 불질러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지. 문00은 집안이 부자라 돈을 많이 짊어지고 이북으로 올라가버렸어. 그 사실이 알려져서 집안사람들이 다 풀려났지.

인민재판을 하는데, 이 사람들을 죽여야 쓸 것인가, 살려야 쓸 것인가, 물어 보더라고. 그란디 우리 아부지가 그래,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 살려야 쓴다고. 그러닌까 이 영감부터 죽여야 쓴다고 난리여. 따발총을 든 인민군이 그래, 살려야 쓸 것이면 외쳐야 한디 다들 가만히 있다고.”

마을에서 벌어진 인민재판을 이야기 하는 문재명의 목소리는 아주 담담했다. 그의 표정은 아홉 살 소년의 시선과 여든이 넘은 노인의 회한이 겹쳐 순정하고 쓸쓸했다. 문재명은 그 목소리와 표정으로 한국전쟁 당시 누나의 죽음을 이야기 했다. 1950년 스무 살 누나의 이름은 문인임.

문인임의 남편 안00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해방정국에 여운형 선생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에 매진했다. 한번은 우익에게 테러를 당해 기둥나무에 묶여 한강에 던져졌으나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당산제를 지내는 한재희 이장
당산제를 지내는 한재희 이장

 

1947년 7월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광주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문인임과 안00는 1950년 전후 결혼했으나, 문인임은 고향집(장흥군 유치면 덕산리)에 머물렀고 안00는 부산면 인민위원회에서 지하활동을 했다.

장흥을 인민군이 점령한 시기(1950년 7월 말에서 그해 10월 전후) 안00는 부산면 면당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곧바로 군경이 장흥을 수복하자 유치 가지산으로 입산했다. 1950년 말 어느날 밤 문인임은 몰래 전갈을 받고 남편에게 주기위해 떡과 먹을 것을 마련하여 유치면 조양3구 상촌마을을 찾아들었다.

어린 새색시이기에 집안사람 문00과 동행했다. 그러나 상촌마을에 매복해 있던 경찰에게 문인임은 붙잡혔고, 문00은 도망쳤다.

장흥경찰서에 수감된 문인임은 다음 해인 1951년 1.4후퇴 무렵 수백 명의 사람들과 빈재 골짜기에서 집단 학살당했다. 사람을 가득 실은 트럭이 장흥경찰서에서 빈재까지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 아버지 문성열은 1952년 어느 날 빈재 집단학살지에서 딸을 찾았다. 거친 비바람에 거의 육탈(肉脫)한 딸은 남자들 사이에 묶여 있었다. 집에서 입던 옷과 머리칼(문인임은 새치가 많아 머리가 희었다고 한다)을 보고 딸의 시신을 확인하여 가까운 곳에 가매장했다.

덕산마을사장나무 앞에 선 마을사람들
덕산마을사장나무 앞에 선 마을사람들

 

덕산마을이 소개되고 집이 불타고 난 뒤 살아남은 문인임의 가족들은 1951년 부산면 기동리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문재명은 그곳에서 1952년까지 부산국민학교에 다녔다. 문재명은 학생시절 유치에서 빈재를 거쳐 부산면, 장흥읍에 갈 때면 빈재 오른쪽에 무더기로 있는 희건(하얀 흰옷) 시신들을 보았는데, 무서워서 고개를 돌리고는 했다.

2002년 8월 장흥댐 공사가 한참이던 덕산마을에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 한재희 이장과 마을사람들,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화가, 가수, 풍물패 등 수많은 사람들이 ‘수몰마을문화제’를 열었다. 당산제를 지내고 밤새 굿판을 서럽게 펼쳤다. 마을어르신들은 “백로야 왜가리야 강변 살자” “바람아 강물아 내 동무야”라고 수십 장의 만장을 직접 써서 대나무에 결속하여 마을길을 따라 세웠다.

그 당시 덕산마을 수몰민 고주현의 어머니 문난심(문계태의 손녀)은 오빠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문재풍이라고 동생이 있는디. 전쟁 전에 찬탁이니 반탁이니 심할 때, 명문 광주 서중, 일고 다닌 그 동생이 찬탁에 관여했다가 행방불명되었지요. 그러구마는 전쟁이 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껏 소식이 끊겨버렸어.” 반탁주의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 아니면 월북을 했는지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지만 혹여 북쪽에 살아 있다면 통일 뒤 물에 잠기고 만 고향집을 어떻게 찾아올 것이냐는 넋두리였다.(김호균, ‘바람아 강물아 내 고향아’ 『한겨레21』, 2002. 08. 28.)

유치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일제강점기에 농민군으로 독립투사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수난을 당했다. 해방 후에도 유치사람들이 얘기하듯 한국전쟁 때는 불바다가 되었고, 장흥댐 수몰로 물바다가 되었다. 마을사람들은 수몰마을문화제를 치르며 살던 집과 마을당산나무와 그 속에 깃들어 살던 새와 물고기 등 모든 사라지고 죽어가는 것들을 진혼했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 무고하게 희생당한 마을사람들의 넋을 기렸다. 새색시 문인임과 어느 산야에서 이제는 흙이 되었을 새신랑 안00와 문난심의 오빠 문재풍의 넋을 진혼했다.(제공 : 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기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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