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화 시민기자의 「이웃이야기」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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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화 시민기자의 「이웃이야기」③
  • 장강뉴스
  • 승인 2021.10.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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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한평생 행복한 삶을 살았던 터전을 지키는 ‘할머니의 세상 이야기’

옛 추억을 간직한 체 홀로 사시는 장흥 유치면 할머니 집 ‘계단 공사’ 마무리
비만 오면 전기나가 ‘냉장고 식자재 못 쓰게 돼’ 유치면장 도와줘 ‘전기 공사’
봉미녀, 공단에 10번가서 할머니 불편한 다리 호소 ‘장애인 침대’ 지원받아

계단공사 후 봉사자들과 할머니
계단공사 후 봉사자들과 할머니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맞추어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난 9월은 장흥 유치면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출발하기 전에 아침 일기예보에 비가 조금 올 것이라고 했지만, 할머님이 다리가 너무 불편해 계단을 앉아서 내려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정대로 공사를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 공사를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억수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깔깔깔” 봉미녀(봉사에 미친 여자)는 비 오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는 봉미남(봉사에 미친 남자)을 위해 우산을 받쳐 주면서 배꼽이 빠지라고 웃는다.

“기계에 물들어 가면 안 되잖아” 나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비맞으며 계단 공사 중
비맞으며 계단 공사 중

 

내가 이리저리 덮을 것을 찾으러 다니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봉미녀 눈에는 웃겨 보였는지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나중에 물어보니 우산도 안 쓰고 비에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물에 빠진 생쥐의 모습 같아서 웃었다 한다.

공사 기계랑 용접기 전기 연결선을 비를 맞으면 안 되니, 덮을 비닐을 찾기 위해서 할머니 집 안을 들어가 보았다. 할머님은 작은 방에 아파서 누워 있었다.

그런데 부엌이 냉장고가 열려 있고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황급히 바닥에 있는 비닐 몇 장을 급하니 들고 나가 무사히 기계랑 장비를 잘 덮어 놓았다.

전기가 나가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아 내장고 물이 바닥에 홍건
전기가 나가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아 내장고 물이 바닥에 홍건

 

다행히 비는 곧 그쳤고 공사는 강행되었다.

바닥이 흙이 아니라 시멘트라 어려워 보였는데, 봉미남이 묵묵히 잘 진행하고 있는걸 보고 나는 다시 할머니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할머니 바닥에 이 물은 왜 이런 거예요?” 궁금해서 물었더니.힘없는 목소리로 “몇 년 전부터 비만 오면 전기가 나가 버려” 며칠 계속 비가 와 전기가 나갔다 한다.

냉장고 있는 식자재들이 녹아 그러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본 생활을 할 수가 없는데 정말 큰 일이네”….

전기가 나가 냉장고 음식물 다 버림
전기가 나가 냉장고 음식물 다 버림

 

2004년 제15호 메기 태풍 때 전남은 물바다가 되어서 쑥대밭이 되었다.

그때 할머니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자세한 사연은 봉미녀를 통해서 들을 수가 있었다.

봉미녀 이웃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낡은 작은 초가집을 태풍에 떠내려가지 않게 하려고 집에서 나오지 않고 두 분이 서서 몸으로 벽을 지탱했다고 한다.

나는 봉미녀에게 다시 물었다.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랬더니, 봉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벽에 몸을 붙이고 두 팔을 벌리면서 몸으로 설명을 했다.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다.

할머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는 봉미녀
할머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는 봉미녀

 

태풍이 오던 날, 마을 사람들은 다 피신을 했는데 이 부부는 집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하고 그 집을 지키려 했던 곳이다.

비는 계속 왔고 방안에 물이 많이 차면서 바깥에서 큰일 난다며 부르니 그때야 황급히 빠져나오다가 할머니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다행히 포크레인에 실려 구출되었지만 곧 순식간에 집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쓸려 내려 가버렸다.

몇 초만 더 지체했다면 집과 함께 무사하지 않았을 거라 말하며 봉미녀는 그 날 있었던 생생한 장면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태풍 피해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라에서 반을 부담하면 집을 지어 준다고 했지만, 이 노부부의 재산이라고는 조그마한 논이 전부인데, 우선 당장은 돈은 없고 집이 필요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논을 팔고 빚도 좀 내고 해서 어렵게 1500만 원을 마련해 집을 짓게 되었다.

봉미녀와 할머니
봉미녀와 할머니

 

다리가 온전하지 않아 일 할 형편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땅 한 평 없게 된 할머니는 그때부터 남의 집 밭일을 하러 다녔다.

시골에서 봉고차라고 부르는 차가 있다.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밭에 일하러 가는 차를 일명 ‘봉고차’라고 부른다.

불편한 한쪽 다리를 끌고 일하러 갔다 오면서도 술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꼭 막걸리 한 병을 사 왔다고 한다.

동네에서 제일 가난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님이 금술이 제일 좋았다.

완공된 계단을 봉미녀와 할머니가 내려가고 있다.
완공된 계단을 봉미녀와 할머니가 내려가고 있다.

 

허리를 다쳐 불편한 할아버지와 할머님이 가난하고 팍팍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 세대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자식에게 헌신적인 사랑으로 먹을 거 안 먹고 자식 가리켜 공부시킨다고 어렵게 사셨다.

할아버지가 남의 집 뒷간을 똥지게로 똥을 퍼주고 남의 집에 가서 소를 키워 주고 그 대가로 송아지를 받아와 소를 키워 돈을 조금씩 모아 자녀를 서울 명문대를 보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출가한 아들 집도 며느리가 오랜 암 투병으로 몹시 어려우니 여유가 없는 듯하다.현재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님 혼자 사신다.

연세가 많은데 이 계단을 다리가 아파 엉덩이로 앉아 내려왔는데 이제는 이렇게 난간을 잡고 내려 올 수 있도록 공사를 잘 해서 할머님이 서서 내려오시니 참 다행이다.

9월 한 달은 참 바빴다.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장애인 침대 지원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장애인 침대 지원

 

할머님을 돕기 위해서 장애인 침대를 보조받을 수 있도록 봉미녀가 공단에 10번이나 가서 하소연하며 신청해 결국 지원받게 되었다.

유치면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전기 공사까지 하게 되어 앞으로는 비가와도 전기가 나가지 않게 되어 정말 보람 있는 한 달이 되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주었던 한없는 사랑을 또 올리면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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