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칭찬(稱讚)은 행복(幸福)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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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칭찬(稱讚)은 행복(幸福) 비타민
  • 장강뉴스
  • 승인 2021.07.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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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칭찬은 좋은 점을 일컬어 기림이나 잘한다고 추켜세워준다. 말로는 쉽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 감사한 마음이며 남을 칭찬하는 말이다.

최일중
최일중

인간에게는 선(善)과 악(惡)이 있다. 태어날 때 너나없이 선으로 태어나 살면서 환경의 영향으로 선이 악으로 바뀐다.

칭찬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비타민이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심어주고 인간관계를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온화하게 해줌은 물론 그 넓이를 한없이 넓혀주는 역할도 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데 있어서 기폭제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 바로 칭찬이다. 그래서 칭찬은 좋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누구든지 칭찬을 들어서 기분 나쁜 사람이 있는가를 칭찬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모으려는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많이 소비되지도 않는다. 즉, 아무런 비용도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광폭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효과가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그 여진은 오래 간다. 그래서 우리는 칭찬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말이라고 예찬하는 것이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하다. 상대방을 칭찬하면 자기 자신이 손해 보는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하게 상대방과 겨루기보다는 사슬을 써서 자기가 원하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승 승 게임보다는 자신만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칭찬보다는 오히려 험담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험담이 인간 세상의 독소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모로코 속담에도 ‘험담은 최소한 세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그 첫 번째 험담을 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듣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이를 옮기는 사람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이처럼 험담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험담은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는 곧 우리 주변을 청량감보다는 혼탁함이 감도는 죽음의 강으로 만들어 버리는 짓거리들이다. 이런 현상은 소시민들 보다는 오히려 정치인들을 비롯한 소위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

그들은 이 순간에도 공존보다는 유아독존만을 향해서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직설적으로는 물론 칭찬을 가장한 속임수가 들어 있는 거짓 칭찬, 사탕발림 칭찬, 실속 없는 칭찬, 의미 없는 칭찬, 그리고 금방 뒤돌아가면서 욕을 해대는 칭찬도 마다하지 않는다.

권력이 있을 때 갖가지 아부를 다 해가며 칭찬을 하다가도 그 힘이 사라지면 죽음까지 몰고 가는 정치 모리배 및 장사치들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더 훌륭한 프로젝트를 고안해 낸 사람도 어둠의 뒷골목으로 몰아 가버리는 사람들, 성황리에 치러지는 남의 잔치를 애써 폄훼해야만 가슴이 편안해지는 족속들, 극한적인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넘나들지 못하도록 아류(亞流)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안간힘을 써대는 일부 몰지각한 불신주의자 들, 이런 쓰레기 같은 부류(浮流)들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기 때문에 칭찬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애재(哀哉)다. 그리고 통재(通才)다.

오물투성이 사회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사회로 변모해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칭찬을 생활화해야 한다. 칭찬은 구체적이고 간결해야 한다. 사소한 것부터 칭찬해 주도록 하자.

특히 성공하기 위해서는 평상시부터 인간관계를 폭넓게 해야 하는데 그 한 가운데에 바로 칭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비판마저도 칭찬처럼 하라고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칭찬은 좋은점을 일컬어 기림, 잘 한다고 추어짐, 곧 칭양(稱揚)이다. 그럼 행복은 복된 좋은 운수와 욕구가 충족되어 충만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여우는 우월감에 빠져 깜깜한 동굴로 들어가 버린다. 곰이나 개구리도 아닌데 한겨울을 꼼짝없이 죽은 듯 보낸다. 다시 봄 이내. 하얗게 변해 버린 털에 고개를 숙이고 찾았을 때 여우를 보고 작은 새가 말한다. “이렇게 눈부시도록 하얀 여우는 처음 보았어. 정말 아름다워” 여우는 자신의 흰털을 다시 보게 된다. 꽃이 완연한 봄이 숲에서 나만큼 꽃과 나무를 잘 가꾸는 여우는 없을 거야.

이제 행복은 자신의 행동과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거울 앞에 서면 간간이 삐져나온 흰 머리카락이 보이는 때가 되었다. 이상 현상이었던 새치와 달리 나이 듦과 함께 찾아온 흰머리는 정상이다.

그럼에 도 나를 포함한 우리는 대개 새치보단 너무나도 정상적인 흰머리에 놀란다.

여우처럼 겨우내 동굴에 숨어 버릴 수도 없다. 매일 출근해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거나 살이 조금 찐 것 같다는 인사말도 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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