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성인을 우러러 받들고 어진 이를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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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성인을 우러러 받들고 어진 이를 가까이
  • 장강뉴스
  • 승인 2021.05.3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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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군(강진군농업기술센터 지도기획팀장)

나 홀로 웃는 까닭은 누가 알아줄까? 문도공 다산 선생의 ‘홀로 웃다’

마종군 팀장
마종군 팀장

다산 정약용 선생은 세계사에 어떤 선학과 견주어도 상석에 모실 분이라는 것이다. 한국사의 자랑이요, 자존심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처럼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다.

18세기 후반부터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을 개혁의 인물로 정조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등장한다. 그러나 하늘은 조선이 행복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개혁의 중요한 시기에 정조를 하늘로 불러올렸다.

인생이 힘들다고 하지 마라. 다산은 경북 포항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유배지에 살았다.

공부가 어렵다고 말하지 마라. 한 생에 500권의 책을 읽기도 어려운데 다산은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사람은 사귀는데 나이를 묻지 마라. 다산은 20살이나 어린 혜장선사 초의선사와 학문의 친구가 되었다.

성공에 집착하지 마라. 다산은 벼슬길에 있던 때보다도 벼슬에서 멀어졌을 때 큰 이룸이 있었다. 인생의 깨달음은 있었다. 인생의 깨달음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크게 배운다.

사람을 의심하지도 말고 너무 믿지도 마라. 다산은 같은 조정에서 국사를 논하던 사람들에 의해 유배되었다.

전문성이 없다는 말을 하지 마라. 다산은 배우지 않았어도 수원화성을 설계했고 당대 최고의 기술인 거중기와 농노를 발명했다.

인생에 여유가 없다고 하지 마라. 다산은 사약이 언제 배달될지 모르는 유배지에서 차를 즐겼다. 그래서 호도 다산(茶山)이다.

다산 초당은 단순히 강진만 바다가 넓게 펴진 아름다운 관광유적지라 생각하면 안 된다. 한 인생의 포부를 짓밟는 한 맺힌 곳이다. 그렇다고 구천이 오나라에 복수하기(와신상담 臥薪嘗膽) 위한 다산 초당도 아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광주(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실학박물관이 있다. 여기에 다산의 생가 당호를 여유당이라 했다.

다산 선생이 강진 귀양이 풀리고 바로 고향으로 가서 여유당이라 당호를 붙이고 돌아가실 때까지 숨도 크게 안 쉬고 살았다고 한다.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하고….

모든 일을 감사하고 감사하다 보면 감사 못 할 일이 없으며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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