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회은 위원량 선생 ‘위원량기념비 관련 한시 초고’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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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회은 위원량 선생 ‘위원량기념비 관련 한시 초고’ 발굴
  • 임순종 기자
  • 승인 2021.05.2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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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장흥암각문을 조사해온 장흥문화원(고영천 원장)과 해동암각문연구회 홍순석 회장 (강남대 명예교수)은 5월 25일 회은 위원량의 한시작품 1건을 증손댁에서 발굴했다.

홍교수는 지난 11월에 수리봉 위원량 ‘망곡서(望哭書)’ 암각문을 고증해서 학술적 가치를 제고한 바 있다.

이후 장흥문화원과 함께 위원량의 사적을 추적하면서 많은 자료를 발굴하였으며, ‘회은위원량송암정유허’ ‘위원량 기념비’ 암각문을 조사하여 고증하고 있다.

회은 위원량 魏元良(1882~1945)은 전남 장흥군 기동마을의 토반인 장흥위씨 가문에서 천석군의 아들로 출생한 인물이다.

행장이나 비문이 없어 자세한 생애를 정리할 수 없다. 족보의 단편적인 기록과 어렸을 적에 회은을 보았던 지금의 원로들 기억이 전부이다.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매우 근엄하고, 검소하였으며, 문중이나 마을에 자선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 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회은은 청년 29세 때 한일합병의 국치를 당하고 울분을 토로하며 수리봉 정상의 암벽에 ‘망곡서’ 한시 작품을 새겼다.

가산을 희사하여 인근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장흥위씨 가문의 대소사에 적극 희사했다.

부산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장흥위씨 3세 효열각을 건립한 사람도 회은 위원량이다.

그 같은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장흥위씨 장천문중과 지역유림에서는 ‘회은 위원량 중건묘각 표창비’와 ‘전참봉 위공원량 선행비’를 세웠다.

부산면 용동마을의 ‘위원량기념비’도 수로 공사비를 희사한 것에 대한 공적비이다. 1백년도 안된 기념비가 방치 된 채 훼손되어 판독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전문가들의 자문으로 판독을 마쳤다.

홍 교수는 이 자료를 본보에 제보하면서 “향후 회은의 시문집이 발견된다면 일제강점기 우국지사로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시문이 많을 것이다” 며 “지역 언론사와의 협동으로 찾아보면 좋을 것” 이라고 제안했다.

장흥문화원은 “장흥군과 함께 의향 장흥의 숨겨진 문화유산을 찾아보고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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