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주인공 30 - 천년 도공의 맥을 잇는 강기성 청자명인
상태바
당신이주인공 30 - 천년 도공의 맥을 잇는 강기성 청자명인
  • 김채종 기자
  • 승인 2020.08.10 1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기성 도예가, 2018 대한민국 명인 · 2019 신지식인 · 2020 세계 명인 선정
천년의 빛을 찾기위해 30여년간 외길인생 ‘고려청자 천년 도공의 맥을 잇다’
강기성 청자명인
강기성 청자명인

“도공의 혼이 깃들지 않고 청자의 맥을 잇지 않는 도자기는 결코 명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도예촌에서 다산도자기를 운영하며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강기성 청자명인.

강기성 명인은 30여년간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고려청자의 맥을 부끄럽지 않게 이어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선조 도공들의 맥을 찾고 그것을 갈고 닦아 도공의 혼이 하나가 됐을 때 진정한 도공이 되는 길이라는 일념으로 도전했다.

그 결과 2018년도에 사단법인 대한민국 명인에 이어 2019년에 신지식인에 선정되었으며, 올해 세계 명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강기성 명인
강기성 명인

강 명인은 청자는 빛깔을 최우선적으로 중시한다. 한국의 청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은은함이 특징이다.

두 번째는 선이다. 태극의 선을 들 수 있다. 유려하면서도 잘 빠져있는 어깨선은 풍만하고 가운데는 잘룩하며 바닥은 균형을 잡아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자의 원은 근본과 중심, 공동체, 합일, 음양의 조화를 의미하며,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세계에 청자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 곳곳에 공모전과 순회전, 전시회 등을 추진했다.

2018 대한민국 명인 선정
2018 대한민국 명인 선정

제22회 한국미술제 종합대상을 수상했고, 중국 장가개 세계도자공모전에서 최우수상, 서화아카데미 도예부문 최우수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2010년에 대한민국 예술대상 문화체육부 장관상도 수상했다.

강 명인은 청자문화의 발상지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 선친 강태일씨과 모친 박야례씨 사이에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군대 제대하기 전까지는 어디로 뛸지 모르는 사고뭉치였다고 한다. 성질이 급하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행동이 앞서 싸움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잘 아는 과거 사람들은 도자기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고 한다.

강 명인이 도자기업을 하게 된 계기는 도예촌에서 태어난 인연도 있지만, 강진군에 청자사업소가 생기면서 당시 상당수의 직원 특별채용이 있었는데 1986년도에 입사하여 청자관리 및 판매담당을 맡았다.

2020 세계명인 선정
2019 신지식인 선정

청자관련 업무를 하면서 관광객이나 고객이 청자에 대한 질문이 많아서 청자관련 서적을 독파했고, 나름대로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도록 정리도 했다.

당시 타자기가 있었는데 독수리 타법으로 정리도 했다. 거의 완성단계에서 청자를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후임자에게 넘겨 주고 왔는데 아쉽게도 태워버리고 말아 후회스럽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당시 봉급이 71,000원 정도여서 술값으로도 부족했다고 한다. 그 시기에 도자기 1점당 100만원에서 30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웬만한 직장인 1년치 봉급 수준과 맞먹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사업소에서 좋지 않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같이 근무했던 친구와 현재 고인이 되신 김정식씨와 퇴사해 칠량에 농협창고를 임대해서 함께 도자기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소에 나올 때는 보고 배운 것도 있고, 나름대로 수십 권의 청자 관련 서적을 정리하며 배운 지식도 있고, 또한 함께 도자기를 만들자는 지인들도 있어 자신만만했다.

처음에는 지인들과 전문분야를 나눠 도자기를 만들었다.

전문 분야로 물레성형, 조각, 유약, 전통가마 불 지피기가 있다.

2020 세계명인 선정
2020 세계명인 선정

당시 그는 유약부분과 전통가마 불 지피기 담당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지인 한분이 다시 청자박물관으로 재 입사하고, 물레성형을 담당했던 지인도 독립하겠다며 그만둬 난감한 상태에 봉착하게 됐다.

그래서 혼자 도자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깨너머로 배운 얕은 실력과 책에서 본 수많은 지식들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도자기 색깔도 검게 나오고 모든 것이 실패작이었다.

이렇다 보니 선배 도공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중요한 부분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청자 - 주병
청자 - 주병

그래서 하루는 선배 도공의 뒤를 밝았는데 칠량 봉황마을에 가서 흙(자연철)을 체취하는 모습을 보고 그 흙을 채취해 다시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또 실패했다.

그는 이래서는 도저히 안된다고 생각해 경기도 이천으로 달려가 현재 고인이 되신 이봉생 선생을 만나서 청자 비취색을 만들어 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봉생 선생에게 기술을 다 배우고 다시 강진에서 도자기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강진군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청자사업소에 근무하는 도자기 전문가들을 빼앗아갔다며 괘씸죄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아는 분들게 하소연도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이같은 노력에서였을까 1990년도에 군에서 허가를 내줘 고향인 대구 청자촌에 다산도자기 사업장을 정식으로 냈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청자-매병
청자-매병

업체명인 ‘다산도자기’ 가지고 당시 다산연구회라는 단체에서 ‘다산’이라는 단어를 쓸수 없다고 항의도 받았지만 가족과 여러 지인들이 보살펴 준 덕분에 ‘다산도자기’라는 업체명으로 지금까지 왔다며 항상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사업 초창기 당시 이제는 순탄하게 사업이 풀릴지 알았지만 또 한번 시련이 오고 만다.
빚 보증(13억 정도)을 잘못서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빚 갚으려고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도자기와 함께 한 시간이 30여 년이 흘렀다. 이렇다 보니 남모를 고생도 많이 했다. 특히,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강진 청자 미래에 대해서 한마디 했다.

강진군에 인적자원이 부족해서 경기도 이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강진에 인적 양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말했지만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강진청자의 미래가 밝지만 않다고 했다.

또 강진청자조합 3대 이사장 재임 시절 청자촌에 오면 박물관에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성이 없어 민간요에서 대작을 한점씩 기증하고 군에서 대리석 등을 지원해 ‘청자촌 일대 포토존’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위험성이 있다고 거절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신지식인에 선정되는 과정에서도 강진군에 서운한 점이 있다고 한다.

신지식이 되는 과정에서 군수 추천서가 필요해서 청자박물관에 가서 서류를 보냈는데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결국 다른 지역에 사는 3명에게 통사정해서 추천서를 받았다.

신지식인 서류제출이 끝나고 나니 그때서야 비서실 여직원한테 전화가 와서 추천서가 왜 필요하냐고 문의하는 것에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끝으로 청자조합에 대해서 한마디 했다   

대한민국 명인, 세계 명인, 신지식인 인증서
대한민국 명인, 세계 명인, 신지식인 인증서

강 명인은 “현재 청자 관련 조합이 양분되고 여러 소송이 오가고 있어 많은 업체가 탈퇴하는 등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 힘을 모아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할 때 사분오열 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며 “하루라도 빨리 서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양보해서 도자기업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처음 탄생시켰던 목적과 의의를 가지고 하나로 재결합을 희망한다. 훌륭한 조상의 창조물과 역사물에 대한 존경과 길이 보전하겠다는 마음을 하나된 청자조합으로 군민들에게 보여준다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