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첫 인상부터 시작 된다

최일중(장강신문 논설위원)

2018-03-26     장강뉴스
▲ 최일중 논설위원

우리의 모든 관계는 만남에서 시작된다. 만남 없는 관계란 있을 수 없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극히 드물다. 다른 사람과 직접 얼굴을 마주한 만남이 일반적이지만 전화나 전자 우편을 통한 만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만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만남인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처음에 형성된 인상은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첫인상을 형성할 때에 사용하는 정보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쓸 수 있는 정보라고는 기꺼해야 상대방의 얼굴 생김새 신장 등의 겉모습과 몸짓 말투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만으로도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첫 인상을 무리 없이 형성한다. 무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첫인상만으로 상대방의 성격뿐 아니라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린다. 뚱뚱한 사람을 보면 낙천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는 것 하나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마른 사람을 보고 지적이고 예리한 성격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마나 예민하면 저 나이에도 살이 찌지 않았나 하면서 날카로운 성격으로 단정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잣대로 상대방의 첫인상을 결정해 버린다.

사람들은 왜 극히 제한된 정보로 형성된 첫 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가설 검증 바이어스 때문이다. 첫 인상이 형성되고 난 다음에는 무시하거나 쉽게 잊어버린다. 뚱뚱한 사람을 절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뚱뚱한 사람의 여러 행동 중에서 자기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아예 무시해 버린다. 이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거듭하면서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제멋대로 확인해 버린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 심리학에서는 가설 검증 바이어스라고 부른다.

가설 검증 바이어스를 입증한 연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스나이더와 스완이라는 사회 심리학자들의 실험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실험 대상자인 대학생들에게 외향적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들과 내향적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들이 골고루 적힌 카드 26개를 보여주고 이 카드 중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질문 12개를 선택하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성격이 외향적인가, 내향적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두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골고루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의 결과 대부분의 대학생은 스스로 그 사람의 성격이 외향적인가, 내향적인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나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질문들만 선택하였다. 가설 검증 바이어스가 입증된 것이다. 이러한 가설 검증 바이어스는 첫인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분류하는 혈액형 성격학이 들어맞는 것처럼 생각되는 주된 이유도 가설 검증 바이어스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혈액형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성격이나 행동만을 의도적으로 수집하고 또 그것들을 축적하여 혈액형이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믿게 된다. 가령 사람들은 A형의 사람이 대범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것은 곧 기억에서 사라진다. 기억에 남는 것이 내성적이고 소심한 행동뿐이다 보니 혈액형 성격학이 맞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사람의 성격특성을 나타내는 555개의 단어를 정리한 적이 있다. 555라는 숫자가 말해 주듯이 사람의 성격은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사람의 성격이란 때와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직장에서는 자상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사람이 집에서는 엄한 아버지로 군림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또한 사람이 많은 경우 수줍어 말도 잘 못하던 친구가 친한 친구끼리 모였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사람의 성격에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 인상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 있는 상대의 성격을 제한 된 정보뿐인 자기의 잣대로 재단하여 마음대로 형성한 것이기에 위험하다. 이 모두가 가설 검증 바이어스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가설 검증 바이어스를 버리고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상대방의 실제 모습을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