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득 동학농민군과 그 후손의 애환②
김재득 동학농민군, 고향에 내려와 동학 선택…강진·장흥 전투 참가
기획취재 - 동학농민혁명 장흥 지역인물 삶의 여정과 후손에 끼친 영향
동학농민군 김재득 후손 손자 김찬영씨와 증손자 김이국씨
김찬영 전 동학농민중앙유족회장 병상 생활 아들이 보살펴
100세를 내다보고 있는 고령에 폐렴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음식섭취도 못할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을 방문해 인사를 나눴지만 대화가 거의 불가능해 아들인 김이국(71)씨를 통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123년 전인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34살이던 김재득은 동학에 참가해 석대들전투에서 패한 후 피신하는 도중 강진영암 경계인 월출산자락 풀치재 인근에서 동학농민군 전병후와 함께 검문에 걸렸다.
몸수색과정에서 품속에서 경세유표 등이 나와 동학군으로 발각됐다. 결국 유지기에 씌워 12월 17일 월출산 자락인 영암군 서호면 회문리 회문천 천변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해 강진읍 서산리 선산에 모셔져 있다. 김찬영 고문의 동갑 아내인 윤주정(97)씨는 조부님의 패랭이속에서 동학군의 명단이 나왔었다는 얘기를 시아버지한테 들었다는 얘기도 했다.
동학유족중앙회 고문이기도 한 김찬영씨. 김찬영씨는 식사를 못하시는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동학얘기를 하니 기력이 없는 상태임에도 반갑게 손을 내미시며 눈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조부인 김재득에게는 딸만 2명 있어 절손위기에 김재득의 형님인 김재헌의 둘째아들인 김윤하씨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했다. 김찬영씨는 김윤하씨의 1남2녀 중 외아들이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생기기 전에 활동을 많이 한 김찬영 고문은1994년 한 신문에 동학유족회 창립총회 기사를 보고 유족회 발기인대회에 참석했다. 다음해부터 4년간 동학유족회 중앙회장을 맡아 초창기 동학유족회 설립과 활성화에 기여했다. 당시 이이화 역사학자, 천도교 교령 등을 만나고 지방행사마다 돌아다니며 챙기는 등 집안일은 팽개치고 유족회 활동에 몰두했다. 95세인 2015년까지도 상임고문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고. 동학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던 1996년 5월 30일 일본에 있던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유해 봉환을 원만히 진행시켰다. 당시 북해도대학에 동학에 대한 기록과 유골에 대한 기록이 있어 모셔오게 됐다고 한다.
■동학농민군 김재득의 증손자 김이국씨
이어 “독립유공자, 625참전자, 월남참전자, 518희생자 등은 자료 있어 혜택가지만 동학은 오래돼 자료 드물다. 그렇지만 가장 핍박받은 사람들이 동학농민운동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동학후손들에게도 혜택까지는 아니라도 편리를 좀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