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최일중 성균관 전인

용서(容恕)와 화해(和解)는 내가 먼저

2017-02-05     장강뉴스 기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한 걸음 양보하는 것을 높이 여기니 한 걸음 나아가는 바탕이 된다. 사람을 대할 때는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복이 되니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바탕이 된다.

이는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작곡가이자 명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리스트가 여행 중 어느 조그마한 도시에 들렸을 때의 일이다. 그때 그곳에서는 리스트의 제자라는 한 여류 피아니스트가 극장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연다고 축제 분위기였다.

리스트는 자신의 제자라는 소리에 반가워서 연주회 팸플릿을 열심히 살펴보았으나 그 여류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결코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리스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때 한 젊은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면 저 같은 무명 음악가의 연주회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랬다.

이후로는 절대로 그러지 안흥 것이며 지금의 연주회도 당장 중지하겠다. 그러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리스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로 데려갔다.

리스트는 그녀에게 피아노 앞에 앉으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두려운 눈초리로 리스트를 쳐다보았다. “겁낼 것 없어요. 단지 내가 아가씨의 연주를 한번 듣고 싶어서 그런 것 뿐이지 긴장을 풀고 무엇이든 자신 있는 곳으로 연주해 보아요.” 그러자 그녀는 마침내 결심한 듯 전력을 다해 연주를 해 나갔다. 리스트는 연주를 다 듣고 난 후 그녀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여러 가지 충고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은 방금 나에게 피아노를 배웠소.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오늘밤 나의 제자로서 당당하게 연주회에 임하시오.”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예화를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리스트가 위대한 작곡가가 될 수 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넓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중국 한나라 때 마원이라는 사람은 남의 잘못을 듣거든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 같이 하여 귀로는 들을 지언 정 입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의 허물은 자신의 덕행르 닦는 자료로 삼으면 그만이지 그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은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도리어 화를 불러오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남의 허물을 애기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남을 비난하기를 좋아하면 그 사람도 남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나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남을 이해하고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역사적 대통령으로 유명한 링컨이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일리노이 주에서 애송이 변호사로 일할 때였다. 스튼탠이라는 유명한 변호사와 함께 사건을 맡게 되었다.

링컨에게는 변호사에 대한 공부를 할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서 무척 좋아 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유명한 스탠튼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구나 라고 링컨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스탠튼은 은근히 화가 났다. “저런 촌뜨기 애송이와 어떻게 일을 함께 하란 말인가. 난 못한다.” 스탠튼은 소리를 치며 법정 밖으로 나가버렸다. 링컨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몹시 당황했다. 그런 모독은 세상 나고 처음이었다.

그 후 링컨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국방장관을 누굴 택할까 고민하다 스탠튼씨를 신임 국방장관에 임명하겠다는 말에 참모들은 깜짝 놀랐다. “각하, 몇 년 전 그 일을 잊으셨습니까? 스탠튼이 무례한 행동을 잊은 것은 아니지요?” 참모들이 일제히 임명 반대를 하고 나서자 링컨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수 백번 무시당해도 좋아요.

다만 그 사람이 국방장관이 되어 우리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임무수행을 잘 하기만 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소? 더욱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국정을 잘 수행에 나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 내 편을 만드는 것이요.” 참모들은 링컨의 말에 고개를 끈덕였으며 스탠튼도 있는 힘을 다하여 링컨을 도와 나라 일을 열심히 했다.

이처럼 관용으로 올바르게 판단할 때 다듬어진 인격의 만남이 큰 신뢰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에서 장발장은 신부님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은그릇을 훔쳐서 달아나다 붙잡히게 된다. 그렇지만 신부님은 너그러이 용서를 해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발장은 새사람으로 변화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너그러운 복수와 한 인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항상 싸우고 있는 선과 악의 의지의 대결에서 선한 의지가 승리를 가져올 수 있도록 너그러움을 가진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한다면 관용이라는 덕목은 그렇게 실천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가끔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어 서먹서먹한 관계에 처할 때가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서로가 자존심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의 손길은 내가 먼저 내밀어야 한다. 내가 먼저 남을 받아들일 때 친구와의 서먹서먹한 관계는 봄 눈 녹듯 사라지고 더 나아가 화목한 사회를 이룬다.

우리속담에 남의 흉 한 가지며 제 흉은 열 가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에서 그 아픔이란 내가 저지른 잘못 실수로 해서 생기는 남과의 부자연스런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와 같은 빛나간 관계를 개선시켜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해 줄 수 있는 묘약이 용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범충선공께서 말씀하였다. “자신은 비록 어리석을 지라도 남을 책하는 데는 밝고 비록 제주가 있다 해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는 어둡다. 너희들은 마땅히 남을 책하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책하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용서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 것을 근심할 것이 업느니라.” 관용하는 마음은 사랑과 이해와 용서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야 말로 우리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여 따뜻하게 화합토록 하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나무라며 손가락질 할 때 나머지 세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남을 용서하고 자신을 잘 다스려 나가는 것이 곧 참된 정의의 실천이다. 우리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