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품고 있는 금곡사
2014-02-11 임순종 기자
쟁계암을 일주문으로 삼고 그 품에 안긴 보은산 금곡사
금곡사는 역사속의 전통문화 공간으로 때로는 소풍과 소담한 물놀이 장소로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정겨운 곳이기도 하다. 시인 묵객이 금곡사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화에 담아 내었던 곳,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은 이곳 금곡사에 머물며 쟁계암이라는 바위가 양쪽에 서있는 것을 보고 시 한 구절을 남겨 오늘 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400년의 역사를 지닌 금곡사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삼층석탑 보물 지정…석등대좌 범종 불화 6점 등 보유
방랑시인 김삿갓, 금곡사에 머물며 쟁계암 보고 시도 읊어
금곡사 입구에 들어가면 거대한 석문이 수문장처럼 양쪽에 버티고 있다. 솟아오른 절벽, 동백과 대숲이 어우러진 쟁계암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쟁계암 아래에 김삿갓 시인의 흔적인 시구절이 쓰여 있다.
김삿갓은 두 마리 닭이 다투는 듯하다는 쟁계암 사이로 걸어 들어가 눌러쓴 삿갓을 벗어들고 쟁계암을 바라보며 「쌍암병기의분쟁, 일수중류해분심」‘양편에 바위 우뚯솟아 서로 다투는줄 알았더니, 물줄기 한가닥으로 흐르는 걸 보니 근심 사라지네’ 라는 시를 읊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으며,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듯하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중창되었고 1969년에는 김성활이 불당과 요사를 재건하였다. 1984년 혜선이 관리를 시작하면서 태고종 사찰이 되었다.
석등 대좌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이 절의 입구 길가에 있다. 범종과 불화는 모두 1970년대 이후 조성되었다.
■금곡사 주지 보각스님
금곡사는 수행과 나눔의 원력으로 하나같이 제 자리에서 기도하고 불사에 매진하고 있기에 보은산 자락 금곡에 한송이 꽃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금곡사는 아름다운 도량입니다. 이 아름다운 도량에 항상 인연이 피어납니다. 살아 있는 존재감을 확인하며 부처님전에 공양올리고 번뇌 망상의 사바 고해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기도하고, 불조의 혜명을 잇고자 경전을 펼칩니다.
사바의 번잡함에서 벗어나고 고해의 아픔을 내려놓고 부처님의 품안에서 한송이 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