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장흥지방 최초 서원, 예양서원 묘정비 제막식에 즈음하여

문병길(문화관광해설사)

2026-09-19     장강뉴스

 

-예양서원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

장흥 예양서원 묘정비 건립 추진 위원회(공동위원장 유동종. 김신환)는 지난 9월 16일 10시 30분에 예양서원에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예양서원 묘정비를 완수하고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날 묘정비 제막식에 백광철 군의회 의장, 장흥향교 전교 이영록, 성균관유도회 장흥지부 이병종 회장, 예양서원 원임 내외 귀빈과 오현(이색, 남효온, 신잠, 김광원, 유호인)선생 후손 등이 함께 자리했다,

유동종 추진위원장은“예양서원은 건립 이후 620여 년이나 지나도록 다섯 분 선생 오현(五賢)의 행적이 기록된 묘정비가 없어 안타깝게 여겨오던 중 2021년에 예양서원 임시총회에서 결의하여 후손들의 많은 성금을 모아 오늘 준공하게 되었다.”라고 인사 말씀을 했다.

김재용 추진 부위원장은 경과보고 하면서“1612년에 장흥 유림(정명열, 이승, 선세기, 김여규, 위정훈 등) 수십 명이 발의하여 예양서원을 설립하여 오현사(五賢祠)라고 했다.”며“2021년 4월 29일 예양서원 묘정비 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차례의 모임과 헌성금을 모금하여 1억 2천여만 원으로 묘정비 제막식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여러 번 향토신문에 기고하여“예양서원은 1612년에 유호인 선생의 제자이며 반곡 정경달 선생의 아들인 정명열(丁鳴說. 1566~1627)이 선현(先賢)을 향사(鄕祀. 고을에서 지내주는 제사)하자는 의논을 주창하고 이승(李昇. 1556~1628), 선세기(宣世紀. 1572~1636), 위정훈(魏廷勳:1578~1662, 유호인 선생의 제자 청계 위덕의 후손 )등 10여 명이 사당과 강당 건립을 합의한 후, 당시 장흥부사(府使:종3품직)에게 허락받고 전라도 순찰사에게 보고하여 신잠(申潛:1491~1554)과 유호인(劉好仁 1502~1584)을 배향했던 장흥지방 최초 서원이다.
그 후 월봉 김광원(金光遠 1478~1550), 추강 남효온南孝溫:1454~1492),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을 추배하여 제향(祭享)해오다가 1869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당했으며, 1927년 강당을 중건해 단(壇)으로 다시 모셨고 1975년에 신실(神室)을 중건(重建)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향사일은 매년 음력 9월 9일이며 제수(祭需)단자(單子)는 4변(籩-껍질 안 벗긴 밤. 어포. 말린 대추. 쇠고기 육포), 4두(豆-미나리. 쇠고기 생간. 부추. 생조기)이다. 건물 신실은 3칸이며, 강당은 4칸, 제숙사(祭宿舍)는 4칸이다.”라고 홍보했다.

행정당국에서는 예양서원 향토문화재 지정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 예양서원 신실 숭현묘(崇賢廟)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1454~1492), 영천(靈川) 신잠(申潛, 1491~1554), 월봉(月峰) 김광원(金光遠, 1478~1550), 천방(天放) 유호인(劉好仁, 1502~1584) 선생의 다섯 분 위패를 모시고 있다.
우리 장흥은 예로부터 도학문장(道學文章)과 충효절의(忠孝節義)를 숭상하여 경모(敬慕)하는 선비정신이 충만하여 문림의향(文林義鄕)고장으로 오늘날까지 그 향맥을 이어오고 있다.
예양서원이 건립된 이후에 창건된 우리 고장의 사우(祠宇) 가운데 전라남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연곡서원, 강성서원, 반계사, 만수사, 영석재, 월산재, 백산재, 해동사, 죽천사 등 9개소이다.
앞으로 우리 장흥의 최초 서원인 예양서원(숭현묘. 암각문 포함)이 향토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도록 적극적인 검토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