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소설가의 신작 대하소설 『흐느끼는 하늘과 땅』 연재4
흐느끼는 하늘과 땅1
6
운현은 기둥을 붙잡고 마룻구멍으로 보이는 하늘을 응시했다. 수많은 별들이 어둠 속에 박혀있었다.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수런거려댔다.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올 것만 같았다.
“소쩍 소쩍 소쩌쩍….”
귀촉도는 뒷동산 도래솔 가지에 앉아 잠 못 이루고 서럽게 울어댔다. 무어가 그리도 괴로운지 구슬프게 서러움을 토해냈다.
‘내 나이도 고희가 되어가니.’
운현은 기둥을 어루만지며 집터를 돌아다녔다. 뒤란에서 서성거리다가 마룻대를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산새 한 마리가 둥지를 찾지 못하고 뒷동산으로 날아갔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인 여섯 남매의 자식들과 함께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따뜻한 보금자리인 새집을 짓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준비를 많이 했었지.’
운현은 살아온 지난날을 다시 돌아보았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를 둔 가정을 꾸리며 살아 왔었다. 자신의 삶은 집을 짓듯이 살아왔었다. 살림형편이 어려워 처가동네로 이사 왔다. 기반이 없어 터다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달구질이나 공글리기를 하여 가며 기초를 단단히 다지고 있었다. 방초석이 아니라 돌덩이를 가져다가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을 세웠다. 그 위에 도리를 얹었다. 대들보도 걸쳐놓았다. 종량 위에 종대공을 세웠다. 그리고 오늘 마룻대를 올렸다.
‘오늘 내 삶의 마룻도리를 올린 거야.’
운현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죽음을 위한 준비인지도 몰랐다. 인간의 삶에서 결코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집을 짓기 위한 뼈대는 모두 갖추었지.’
운현의 시선은 다시 상량을 찾아갔다. 마룻도리를 응시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서까래를 걸치고, 서까래의 처마 끝을 일자매기나 방구매기를 하여 자르고, 서까래 위에 산자를 깔고, 알매흙을 얹으면서 적심으로 물매를 잡아 기와를 얹어 놓으면 지붕이 되지.’
운현은 앞으로의 일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아늑하고 살기 좋은 기와집을 짓고 있었다. 벽에 흙을 바르고 방에 온돌을 놓고 툇마루를 만들고 아궁이에 부뚜막을 놓아 부엌을 꾸며야 했다. 집 둘레에 댓돌을 놓고 토방을 만들고 집 단장을 해야 되었다. 마당에는 정원도 만들어 곱게 꾸미고 싶었다.
‘이 새집에서 자식 손자 대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운현은 군침을 삼켰다. 자신만의 거처가 아니라 자손만대를 이어갈 터전이 될 아름답고 평화로운 안식처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칠순이 다 되었으니….’
운현은 몇 번이고 자신의 나이를 들추어 되새기고 있었다. 마음은 변하지 않는데 몸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요사이는 집짓는 데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가끔 현기증이 났다. 며칠 전에는 뒷간에서 대변을 보다가 넘어지려고 했다.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앞에 있는 기둥을 잡았기에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은 많이 변해 살기가 참으로 좋아졌는데….’
운현은 하늘에 박혀있는 별들을 응시했다. 뒷동산 산마루 위에 북두칠성이 보였다. 북극성의 별빛이 유난히도 파란 빛을 냈다.
“쫏 쫏쫏….”
남산에서는 아직도 길을 잃은 머슴 새가 소를 몰며 둥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소쩍, 소쩟쩍, 소쩍,….”
뒷동산에서는 소쩍새가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고 있는지 끊임없이 서럽게 눈물을 흩뿌려댔다.
‘오늘 따라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외롭고 허전하는 거야.’
운현은 눈가에 축축하게 젖어는 서러움을 소매로 닦아냈다.
7
‘고향을 떠나온 지 몇 해이던가?’
운현은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옛날 고향에서 살았던 일들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생각났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동생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동생 순조가 먼저 이승을 떠날 때에 고향에 갔더니 벗들은 모두가 먼저 저승으로 갔다고 하던데.’
운현은 친구들이 몹시 그리워졌다.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었다.
‘타향살이 벌써 오십여 년이 되었구나.’
운현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슬픔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억척같이 살다보니 한 순간에 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있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몽롱하여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양지편 처가 마을로 와 동네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운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눈앞에서는 자신이 살아왔던 궤적이 오솔길처럼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어쨌든 칠십 해를 건강하게 살아왔으니….’
운현은 기둥을 어루만지며 대들보를 쳐다보았다.
‘집안 장손으로서 가족을 위해 충실하게 살아왔는가?’
운현은 자신에게 묻고 또다시 질문했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못했다. 희생은 했는데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잘 못 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한 것 같았다.
‘내 뜻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으나 후회하지 않게 살려고 애를 썼지?’
운현은 별들을 응시하며 눈가에 젖어있는 축축한 물기를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자책한들 무엇 하겠는가? 이제 다 끝나버린 일인데. 배고팠던 그 시절이 그립구나.’
운현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건널 수 없는 강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추억이 아른거리며 지워지지 않았다. 과거가 가슴 속에 가시처럼 박혀 아려왔다. 살아왔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가 영화의 필름처럼 풀리며 눈을 스쳐지나갔다.
“소쩍 소쩍 소쩌쩍…”
소쩍새는 무어가 서러운지 끊임없이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두견새처럼 서럽게 살아왔던 지난 날로 돌아가 보자. 고통스럽게 살아 온 것이 결코 슬프지만은 않아.’
운현은 귀촉도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볼에 맺혀있는 눈물방울을 쓱 문질렀다. 마른침을 삼켰다. 낯 설은 밤길을 더듬으며 가듯이 추억을 떠올리며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