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74

신작 시 - Z

2024-09-09     장강뉴스

어떻게 해야 불행해질 수 있을까?
너는 묻는다

아침에 비 내리더니 그쳤다
비보다는 빗소리가 더 좋은 나는
비를 피하고 
빗소리 듣는다

빗소리에는 먼 허공의 한숨 소리가 뭉쳐있다

내가 푸아 큰 숨을 내뱉으면
밀려난 허공이 조금씩 조금씩 다른 허공을 밀겠지

달이 자라는 정원이 있다면 좋겠다
너는 말한다

보이는 달은 달 나무의 그루터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세상에서
달을 심는다는 건 너의 미소를 나의 표정에 접목하는 것
달이 커다랗게 자라길 기다리는 동안, 동안이 생긴다는 게 좋은 거지

사물로 바꿀 수 없는 감정은
언제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아프지 마
다치지 마
죽지 마

불행이 왔을 때에야 비로소 행복은 재생된다
너는 국수를 먹고
나는 수박을 먹으면서

아그배나무꽃이 피었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쌀을 안칠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삶이란 건 펼쳐놓으면 누더기 같아
그래도 정들었으니 입어보는 거지
이런 누더기를 견딜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지?

누더기를 걸친 채 걸어간다
발끝에 닿는 민들레꽃 향기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내 삶이라고
민들레의 삶을 헤칠 수는 없다

그것만은 지키자!

손을 줘 봐 

이대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