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시인과 떠나는 감성여행73
신작 시 - 할 말 없지?
할 말 없지?
너는 팔짱을 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너는
드라이아이스처럼 담담하다
나는 차갑지 않아
견딜 수 없을 뿐이야 더는
이라고 너는 말하는데 창에 묻은 얼룩에 햇살이 달라붙는다
할 말 없지?
선언하듯 말하고는 입술을 다문다
지퍼에 끼인 털처럼
내 마음은 움직일 수 없다
너는 커피를 마시고
나는 얼었다 풀린 부직포처럼 쪼그라든다
많은 말을 하였지만 너는 내 말이
쓸데없는 말이라 한다
어떤 말을 하여도 까르르 웃던 날이 있었다
웃고만 있어도 세상이 환해졌다 지금은
감미로웠던 말들은 딱딱해지고
내가 뱉은 말들은 찍자마자 재활용되는 신문처럼
멀리 밀쳐진다
쓰레기 봉지에 구겨 넣어진 다육식물 같다
저 다육식물의 이름이 뭐였더라
핑크 뭐랬는데
기억은 핑크에서 끊어진다
내가 너에게 주는 마음도
핑크에서 뚝 끊어지고
뿌리가 사라졌다
찾아보고 기억을 문질러보아야 비로소 살아나는 핑크 프레디라는 이름처럼
온전했던 것을 닳지 않게 지녔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돌도 녹아
그거 알지? 말하는 너는
할 말 없지?
다시 내게 낚시바늘 같은 물음표를 던지고
아무리 물음표를 물어도 내 말은 힘줄이 없어서
흐느적거리고
나는 걸리지 않는 말을 뱉으며 물을 마신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어느 말도 너를 움직이게 할 수가 없는 거야
거리를 걷다가 신호등에 걸렸을 때 바라보았던
유모차 끄는 노인의 걸음걸이에 대한 말만 해도
눈에서 별빛을 꺼냈던 너는 없고
너는 다그치며 내 입을 봉한다
할 말 없지?
어둠 속에 꽃잎 하나 떨어질 때
꽃잎이 어둠을 밝히지는 못해도 어둠은
꽃향기를 품어본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나는 어둠에 묻힌 꽃잎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할 말 없지?
보이는 것이 어둠뿐일지라도
나란히 앉아 어둠을 보고 있으면
어둠 속에서
우리의 눈빛을 마중 나오는 빛이 있을 거야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 없지? 너의 말은
무너진 하우스 지붕처럼 나를 덮친다
아무리 철로처럼 길게 말을 내밀어도
깍두기처럼 잘린 내 말은
너에게 이르지 못한다
손톱만 깎고 있어도 귀엽다고 말했던 너는 없고
할 말 없는 너만 남아서
쇠로 된 새처럼
할 말 없음을 날린다
철판처럼 차가운 너의 어둠에 한 잎 꽃잎 같은 말을 붙이면 어떨까?
할 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