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김홍철 주필
책임자(責任者)가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미래(未來)가 없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모든 매스컴이 난리법석이다. 리스트에 이름 석자가 기록된 인사들에 대해 검찰이 증거확보와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조사관련 기사가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있고 방송은 방송대로 특히 종편은 뉴스특보라는 이름으로 존중해야할 인간의 존엄성마저 난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지난 4.29 보궐선거에서 대패한 야당은 야당의 존재가치를 망각하고서 항로를 잃은 난파선처럼 갈팡질팡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지난 4월16일 남도의 끝자락에 있는 진도 팽목항에는 1년 전, 수백 명의 아까운 생명을 차디찬 바다 속에 수장(水葬)시키고도 아직도 그 영혼들을 위로하지 못한 위정자(爲政者)들이 버젓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긴 한숨을 토해내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다시금 생각하기 싫다.
‘내 자식을 살려내라‘며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뒤로 하면서 35년 전 광주(光州), 그날의 아픈 기억들을 토해 내야 했으니 이 또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원죄(原罪)가 아닐는지.
이렇듯 우리 사회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는 마음껏 누리되 이로 인해 생겨나는 잘못된 결과물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잘 될 수만은 없다.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을 할 수가 있고 시작부터 잘못된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다보면 그 결과는 반드시 파국으로 몰고 간다.
이러한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만 어느 조직이나 사회이건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고 다시는 똑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것이다. 이는 결국 조직과 사회의 책임자에게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반만년 역사 속에서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않고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회피하면서 부귀영달을 누려온 사례는 부지기수다. 구지 오랜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근, 현대사와 최근의 일어난 사건들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강점기 시대 친일파의 청산문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작년 4월 16일에 일어났던 세월호 침몰 사건이다.
우리 반만년 역사에서 다른 민족에 의해 한반도를 넘겨주고 통치를 받은 유일무이한 역사는 일제강점기 36년이다. 3.1만세 운동과 류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죽음을 내건 피맺힌 저항, 그리고 만주벌판에서 일제의 폭압에 굴하지 않고 총칼을 들고 싸우다 남의 땅에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고혼이 되어버린 이름 모를 의병들의 무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했는가.
이때 지금의 서울인 경성에서 일본인들에 협력하면서 친일의 노예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수많은 친일파와 부일협력자들에게 8.15 해방 후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단죄(斷罪)했는가. 그들에게 민족반역의 죄상을 물어 어떤 처벌을 내렸었는가. 불행하게도 이승만 정권은 그들을 단 한명도 처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친일파들은 미군정기(美軍政期)를 거치면서 이미 권력의 중심에 진입했었고 학계, 정계, 경제계, 언론계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그가 누린 특권(特權)의 책임을 반드시 지게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의 반민족 행위자 숙청위원회에서 반민족 행위자에게 단죄를 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들은 우리의 일제강점 36년에 비하면 짧은 3년간의 독일군 점령하에서 독일에 협력한 반민족 행위자들을 공식적으로 1만명이 넘게 처형(사형)하였으며 레지스탕스에게 즉결 처형당한 사람까지 합치면 12만명에 달한다는 설(說)이 있다 그것이 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는 차가운 이성(理性)이요 지성이다. 민족 반역자들을 단 한명도 처벌하지 못한 우리 역사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이것 역시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과거다.
35년전 광주는 어떠했던가. 권력에 미친 정치군인들이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했던 역사적인 사건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책임을 물었던가. 그 중심에 섰던 인물들 중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직을 거친 사람이 두 명이나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는 그야말로 특권을 누리는 우리로서는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지금도 살아서 보수(保守)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층의 한 축(軸)을 이루고 있음이다. 이들에게서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던 책임을 지는 모습 또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세월호 침몰사건에서도 국정(國政)의 최고 책임자가 진솔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2015년 4월 16일 그날 진도 팽목항에서 그들은 추모의 모습을 보였다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자신들의 잘못을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뉘우치는 자세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역사의 현장에서 보여준 책임자들의 자신들이 져야할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들이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이러할진대 이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최소한의 조직인 마을 공동체에서도 이런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을이 자신들로 인해 어떠한 피해를 입고 있는 지는 뒷전이다. 자신에게 하찮은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책임자로서 지켜야할 덕목은 아무것도 아니다. 높게는 한 국가의 대통령에서부터 아래로는 마을이장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역사(歷史)는 돌고 돈다. 과거는(過去)는 현재(現在)의 거울이요, 현재는 미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척도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화두(話頭)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