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지혜(智慧)로운 사람

김금(장흥군보건소 건겅증진팀장)

2018-10-09     장강뉴스
▲ 김금

우리는 지혜와 지식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지식은 사물의 이치를 현실적 기능으로 아는 것에 그치지만 지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창조적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지혜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 독서하면서 인생의 가치와 삶의 방법을 깨우치도록 깊이 생각하며 성실히 노력할 때 성숙되는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적정히 응용하여 현실에 잘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지혜가 있는 것이다. 고정된 사고에서는 지혜가 발휘될 수 없다. 남보다 한 발 앞서 이끌어낼 수 있는 성숙된 지혜야 말로 현명한 삶을 인도한다.

몇가지 지혜로운 사례를 들겠다.

‘작은 촛불’이라는 이야기이다. 외국의 한 실업가가 거대한 공장을 발전시키느라고 사업을 위해 온 정열을 바쳤다. 그런데 사업이 한참 성공할 무렵 불치의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가 죽음을 선고받고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누가 사업을 맡아 훌륭히 경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세 아들에게 각기 10센트씩 나누어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시장에 나가 이 빈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을 사오너라. 내가 준 10센트 이상 써서는 결코 안된다.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너라” 하였다. 석양이 될 무렵 큰 아들이 건조한 짐을 끌고 왔다. 그 짐을 풀고 보니 방의 두 벽을 채울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만족하지 않았다. 둘째 아들은 솜 두 포대를 사왔다. 그것을 풀었을 때 방의 세 벽을 채울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수고했다고 했다. 이 때 셋째 아들이 들어왔는데 그의 손에는 형들처럼 커다란 물건이 들려 있지 않았다. “저는 아버지께서 주신 10센트로 굶고 있는 아이에게 빵을 사주고 나머지 1센트로 양초를 한 자루 사왔다”라고 말하고 막내아들은 촛불을 밝혔다.

빛은 온 방안을 채웠다. 셋째 아들은 어려운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며 방을 밝은 빛으로 밝히는 현명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셋째 아들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지혜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여 회사를 경영할 능력이 있다고 믿고 그 아들에게 회사를 맡겼다.

변화를 예견할 수 있거나 변화에 대한 바른 인식이 곧 삶의 지혜다. 밝은 미래를 위해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능력을 키우는 사람이다.

한 백발노인이 밭에 나와 어린 나무를 심고 있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청년이 이를 보고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왜 나무를 심으십니까?”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지!” 라고 노인은 대답했다.

청년은 노인의 말이 우습다는 듯이 “그럼 이 나무에서 언제쯤 열매를 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라고 물었다. 노인은 “수 십년은 있어야 할 걸세.”라고 대답했다. 청년은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시 물었다. “노인장께서는 그때까지 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열매가 풍성했었네.

그건 내 할아버지께서 심으셨던 나무들이 열매를 맺은 것인데 나는 그 열매를 먹으며 자라났다네. 지금 내가 나무를 심는 것도 같은 이유라네. 내가 죽고 난 훗날 나의 후손들이 이 열매의 단맛을 보기만 바랄 뿐이지.”

우리는 선조들이 하나 하나 갈고 닦아 놓은 터전이 있기에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고 우리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을 준비하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한다. 지혜는 삶의 질을 가꾸는 것이다.

지혜는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와 노력에서 움트는 것이다. 삶을 보다 현명하게 풀어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지혜로운 사람은 삶의 진실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