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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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5.02.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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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일선 스님

뒷산 비자림 밑에 차밭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니 밝고 포근한 새해 광명이 들어와 환희로움 가득 합니다. 또 둘레길을 조성했더니 차밭은 어느덧 수행의 공간이 되고 빛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어 성성적적하게 깨어 있습니다.
비자숲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비자향을 따라서 길을 나서지만 향기를 돌이켜 물들지 않으니 화두삼매에 노니는 즐거움이 참으로 거룩합니다. 오늘은 한 무리의 순례자들과 포행을 함께하며 마음을 챙기니 모두가 더 없이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이렇듯 태양은 손바닥만 가려도 그늘을 만들지만 화두일념은 산하대지를 온통 광명으로 바꾸어 줍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수행법이 있지만 가장 수승한 간화선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인생이 어찌 되었을지 참으로 아찔합니다.
올 겨울은 포근할것이라는 전망과 다르게 눈도 많이 오고 유난히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사대사를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납자의 입장에서는 한치의 추위도 용납할 수가 없어 오직 화두삼매로 충만 할 것입니다. 눈앞에는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일체 대상이 나타나 보고 듣고 알지만 사람들은 정작 아는 것인 성품을 모르기 때문에 고통속에서 헤메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은 모두 사라지지만 오직 모를 줄아는 성품 하나는 홀로 우뚝하여 항상 여여합니다. 그래서 일체처 일체시에 나타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고통이니 이것이 무엇인고 의정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아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모를줄아는 성품하나가 홀로 드러나면 이것을 화두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화두가 없는 사람은 산송장이라고 극단적인 언어로 경책을 했으며 간화선은 화두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파리가 임금에 얼굴에는 붙어도 불꽃에는 붙지 못하듯 오직 모를 줄아는 성품에는 미혹과 지해마저 흔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일체를 태워버리기에 깨달았다는 불법지견마저 세울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 대상과 악지악각을 자나깨나 오직 알수 없는 의정으로 돌이키면 업력과 지해병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삼매가 현전합니다.
사시 기도 시간이 되니 추운 날씨속에서도 순레객들이 찾아왔습니다. 새해도 벌써 보름이 지나고 보니 참으로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사는 마치 겨울 바다처럼 험난하기에 부처님께서도 인생을 고해라고 했습니다, 생노병사와 우비고뇌의 인생고해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을 해야합니다. 다행히 금생에 사람 몸을 받았고 간화선법을 만났으니 이번생에 생사대사를 해결을 해야 겠다는 발원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보통 불자들은 자기안에 본래 부처인 보배의 성품이 있는 줄을 믿지 못하고 밖으로 찾아서 헤메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절히 찾아 헤메본 사람만이 순간 그 동안 밖으로 찾아 헤메던 일념을 돌이켜 문득 자기 안에 본래 부처인 불성 광명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면 비로서 사람으로 태어난 인연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닫고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신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비로서 나와 더불어 모든 이웃들이 둘이 아님을 확실하게 깨달았기에 동체대비심의 원력으로 일념이 대상을 만나게 되면 염염히 화두로 돌이켜 물들지 않게 됩니다.
소임을 다하면서 수행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일체 시비가운데 있으면서도 대상에 물들지 않고 화두일념을 이루어 화합과 소통을 이루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서운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지나갑니다. 문득 바람결을 돌이켜 보니 꼬리가 없습니다.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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