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본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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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본래 고향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5.02.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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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일선 스님

허공은 매운바람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게 깨어 있다. 빈 몸으로 서있는 나무들은 도란거리는 낙엽들의 지난 얘기 들으며 정답게 추위를 견디고 있다.
10일여 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에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서로 정을 나누며 객지의 외로움과 고다른 마음을 위로 받는다.
사찰에서 설날은 일체 은혜에 감사하는 통알 삼배를 하고 윳놀이와 함께 성불도 놀이를 하면서 익은 업력은 설게 하고 아직 덜 익은 수행은 더욱 익히는 즐거운 날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유달리 정이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 받으면서 용기 백배하는 것은 고향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생을 하면서도 고향을 찾아 부모 형제와 일가친척을 만나고, 어릴 적 뛰놀던 친구들과 함께 뒷동산에 오르고 옛 샘물을 마셔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래 고향인 자기의 성품으로 회귀하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정이란 본질이 사랑과 원망이라서 집착하게 되면 만나고 헤어지는 고통을 피할 수 가 없다. 그래서 출가 수행자들은 부모님에게 몸을 받기 이전의 본래 고향을 찾아서 일찍이 길을 나섰던 것이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사랑이나 원망으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 때문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끝없이 은혜를 갚고 원수를 갚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삶으로 생각한다. 점점 수행하는 것과는 멀어지고 생사윤회의 고통 속에서 헤매는 것이 마치 파도 속에서 부침하는 나무토막과 같다. 그래서 ‘신심명’에서는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없으면 서로 통하여 밝으리라고 했던 것이다.
겨울 바다는 파도가 험하여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한 섬을 의지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 고해를 건너가려면 우리는 부처님의 법인 가르침과 자기 자신을 섬으로 삼아야 한다. 한 생각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바로 알아차리면 사랑도 아니고 미움도 아닌 것이 홀연히 나타나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며 부처라고 한다.
무시이래 깨달음을 장애하는 것 가운데 가장 질기고 모질게 따라붙는 것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온종일 한 치의 틈을 주지 말고 마음을 살피기를 모래 속에서 마치 금싸라기를 가리듯이 해야 한다. 그러다가 날이 가고 달이 차면 앞생각에 비록 속았지만 뒷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홀연히 여여한 성품을 요달하게 된다.
하지만 깨달았다는 생각은, 미혹의 쇠사슬은 벗어났지만 오히려 금사슬에 다시 묶이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눈멀고 귀 먼 벙어리가 되어 크게 죽어서 보통 사람으로 태아나야 한다. 그래서 선서들은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어머니께 드릴 선물조차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명절에 찾아가는 고향은 정을 나누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지만 진정한 마음의 편안함이 없기에 본래 고향인 자기의 성품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깨닫고 보니 한 걸음도 옮기지 않았다고 했던 것은 일상사를 떠나서 특별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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