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최일중(성균관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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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최일중(성균관 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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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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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는 백행지원야(百行之源也)다

▲ 최일중(성균관 전인)
우리 선조들은 효는 백행지원야라고 가르쳐왔다. 인간의 모든 행실 규범은 어버이에 대한 효에서 비롯된다.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한 사람을 효자(孝子) 효부(孝婦)라 하고 조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사람을 효손(孝孫)이라한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가난한 젊은이가 풍산홍씨 집성촌인 송길 마을에 살고 있었다. 늙으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이는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려고 날마다 부지런히 일을 했다.
농사철이면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틈틈이 마을 동쪽 건지산과 앞산의 비안봉에 올라가 뗄나무를 해 장에 내다 팔기도하며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날마다 늙으신 홀어머니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는가 하면 잡수시고 싶은 것, 입고 싶으신 옷가지를 장만해 드리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세숫물도 떠다드리는 등 어머니를 모시는 정성이 지극했다. 비록 가난한 살림이지만 어머니는 부잣집의 마나님 부럽지 않게 행복했다.
이렇게 젊은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칭찬은 끊일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이의 어머니가 앓아 눕게 되어 의원을 불렀으나 의원은 병명을 알지 못해 처방을 내릴 수 없자 여러 가지 약초를 섞어 달여 먹으면 그 중에 효험 있는 약초가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백가지 약초를 구해다 달여 잡수시게 했다.
혹시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이 날부터 그는 백가지 약초를 구하기 위해 날마다 산속을 헤매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가시덩쿨에 찔리기도 하며 약초를 구해와 어머니에게 달여 드렸다. 어머니의 병이 차츰 나아지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더욱 부지런히 산속을 헤매다가 약초를 구해왔다.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약초를 구하려 다니는 젊은이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걱정을 했다. 그런 정성때문인지 그의 어머니는 앓아 누운 지 열 달 만에 백가지 약초를 먹고 완쾌되었다.
그 후 더욱 부지런히 일해 어머니를 잘 모시는데 어느 해 가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은 몹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며 차례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내리지 않아 곡식들이 말라지고 마을 사람들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버린 논바닥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하느님도 무심하십니다, 제발 비를 내려주십시오” 그러나 가뭄은 더욱 극심히 먹을 물조차 부족하여 마을의 인심도 매우 나빠져 갔다.
그래서 젊은이는 날마다 비안봉에 올라가 비를 내려 주십사하고 산신령님께 간절히 빌었다. “신령님, 신령님, 살려주십시오. 가뭄이 들어 모든 농작물이 다 말라가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산에 올라 빌어대는 젊은이의 정성과 효성에 산신령도 감동했던지 한 달이 되던 날, 밤에 젊은이의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네 효성에 감탄했노라. 내일 밤골(논경지)에다 샘을 파 보아라.” 깜짝 잠에서 깨어난 젊은이는 방안을 살펴보았다. 함께 잠을 자던 어머니도 놀랐다. 젊은이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옵방골로 나가 샘을 파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리면서 혀를 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말라진 논바닥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열심히 파 내려갔다. 한참 후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갈라진 땅속에서 물이 솟구친 것이었다. 세차게 솟구친 물은 삽시간에 파 놓은 샘 속에 가득 차올라 넘치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샘물위에 가득 떠오른 것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 자세히 살펴본 후 또 한편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건 메밀이잖아.” 샘 속에서 메밀이 쏟아져 나왔다. 젊은이는 쏟아져 나온 메밀을 건져냈다. 그리고 그 메밀로 어머니를 봉양해 드릴 수가 있었다. “젊은이의 효심에 하늘이 탄복해서 물과 메밀을 주신 걸 거야. 효자 덕분에 우리 마을이 살게 됐어.”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서로 부등켜 안고 춤을 추었다. 샘 속에서 나온 메밀로 굶주림을 해결 할 수 있었고 그 젊은이가 파 놓은 샘물로 가뭄을 막을 수 있게 되자 마을의 인심도 옛날처럼 좋아지게 되었다.
그 후 가뭄이 없어지자 메밀은 조금씩 오랫동안 나왔으나 최근에야 메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샘 속에서 메밀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샘 속에서 메밀이 나왔다고 하여 그 샘을 메밀샘이라 불리어 전해지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도 효자를 도왔다.
이러한 사례에서 효에 관한 미담을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비과학적 비현실적인 점은 재고되어야 하겠다.
소학 효도편에 孝(효) 悌(제) 忠(충) 信(신), 즉 효도 우애 충성 신의는 개인윤리의 기본이다. 이 네가지의 덕이 갖추어진 사람은 가히 군자이며 대장부이고 선비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효는 가정생활의 기초가 된다. 근래에 이르러 개인주의가 오도되어 이기주의 경향을 보임에 따라 전통적 양속인 효도 대한 관심이 크게 퇴색해가고 있다.
효도의 사상은 감정적인 자연성보다는 이성에 입각한 원리적 예법으로 다루어져 내려온 것이기는 하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의 동일체의식이 한층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어버이는 그의 자녀를 자신의 분신으로 보고 자신이 희구하는 모든 미완성의 일들을 자식을 통하여 성취하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어버이들은 당신 자식 ‘참 똑똑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떠한 칭찬 못지않게 기뻐한다. 부모자식간의 동일체의식은 모든 어버이들이 심신과 물질의 어떠한 희생도 그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면 감수하고 봉사하는 정신구조를 갖게 하였다. 부모가 온(全) 효도(즉 精誠)를 하여야 자식이 반(半) 효도(즉 奉養)를 한다는 속담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부모의 희생정신은 그것이 자녀의 교육열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어버이들이 그의 자녀를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려는 것, 이왕이면 일류학교에 보내려는 것, 나아가서는 보람 있는 인생을 누리도록 하려는 것, 어떠한 경쟁에서든 이기도록 하려는 것이 모두가 자녀와 자신을 동일체로 여기는 의식구조의 소산이다. 여기에 효에 대한 교육의 새로운 개념정립이 필요하다.
지난날의 효는 경제적 측면에서 어버이에 대한 봉양이었다. 물론 입신양명은 대효(大孝)의 하나였지만 이것은 제한된 일부 귀족계급만의 이야기다. 오늘날의 효도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이룩되어가고 있는 현 시점의 여건을 감안할 때 효도의 근본을 정신적인 면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 같다. 더욱이 핵가족 사회에서는 그 점이 보다 크게 요청된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주는 것은 큰 효도며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은 작은 효도이고 상심되게 한다는 것은 불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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