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중 선생과 함께하는 논어이야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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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선생과 함께하는 논어이야기 22
  • 장강뉴스
  • 승인 2017.03.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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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사귀는 관용의 덕

特身不可太皎潔(특신불가태교결) 一切汚辱垢穢(일체오욕구예) 要茹納得(요여납득)
與人不可太分明(여인불가태분명) 一切善惡賢愚(일체선악현우) 要包容得(요포용득)

▶태교결(太皎潔): 매우(지나치게) 깨끗함. 태(太)는 지나침. 교(皎)는 달빛처럼 밝다. 교결(皎潔)은 깨끗하고 밝다.
▶오욕구예(汚辱垢穢): 때가 묻어 더럽고 구(垢)는 때, 더럽다. 구예(垢穢)는 더러움
여납(茹納): 받아들이다

처신함에 있어 지나칠 만큼 결백해선 안된다. 일체의 오욕이나 더러운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나치게 분명해서는 안된다. 일체의 선악이라도 현우(賢愚)라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주장하는 관용의 덕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지라도 최소한의 기본적 정신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고기가 깃들지 않는 법이다. 대인관계에서도 지나치게 고결함을 지키려고 두부모를 치듯 선악을 구분하고 오욕은 용납하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모든 더러움과 욕됨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도량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악과 타협해 같이 더러워지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많다. 악한 사람,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등. 여러 형태의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나보다 나은 사람한테서는 배우고 나만 못한 사람은 계도하고 일깨움을 주는 도량. 바로 그 점을 강조한다고 보면 대과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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