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인공② - 송재(松齋) 이문갑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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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주인공② - 송재(松齋) 이문갑 서예가
  • 조창구 기자
  • 승인 2016.06.02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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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를 지켜온 송재(松齋) 이문갑 선생

77세의 나이에도 서예봉사활동 활발
꾸준한 작품활동과 후학양성에 매진

▲ 이문갑 선생
새해 첫날 새벽 이른 시간 정남진전망대에서 해맞이를 보기위해 몰려든 장흥군민과 관광객들에게 일필휘지 거침없는 필력으로 가훈을 써내려 가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거침없는 필력을 과시하는 주인공 송재(松齋) 이문갑(77) 서예가.
장흥군 관산읍에서 작품활동과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이문갑 선생은 시골 어르신의 모습이다.
이 선생은 40여년 동안 붓을 놓지 않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 보다 더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서예을 배우기 시작하며 꿈꿔왔던 초대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이 선생은 “붓을 통해 마음을 담기 때문에 단순한 글자가 아닌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서예(書藝)다” 며 “세상살이의 지혜를 짧은 문구속에 담아낸 붓글씨는 때론 인생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며 묵향에 배인 인고의 세월을 설명했다.
이 선생은 서예의 다섯가지 서체인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오체(五體)를 섭렵했으며 한국서예협회 장흥군지부장직을 맡고 있다.
이 선생은 예술가로써 고상한 품위 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선생은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다.
장흥교도소 서예봉사활동에서부터 말산업고 서예 예술강사 출강, 토요시장 월1회 가훈써주기 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보성 다향축제기간에 열리는 전국서예대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관산읍에 위치한 서예교실에서 수강생들에게 무료로 붓글씨와 한자를 가르쳐주고 있으며 대덕읍과 회진면에서는 교통비수준의 수강료만 받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선생은 “죽을 때 싸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어렵게 배운 것 알려주고 가자는 생각에서 서예교실 운영하게 된 것이다” 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서예가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일은 “애초에 맘 먹었던 전라남도 초대작가의 꿈 이룬 것이 가장 기뻤었다” 며 “활동하면서 물축제 때 외국인들이 통역을 통해 써진 글에 대해 묻고나서 설명을 듣고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아주 좋아할 때나 새해 첫날 가훈써주기 현장 방문객들이 다 못써주자 나중에 직접 찾아와 부탁해 써갈 때가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이 선생은 장흥군 용산면에서 태어나 16살에 관산으로 독립해 철물사업을 시작했다.
30대중반 무렵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문묘와 유림쪽 일을 맡고자 했으나 장사나 한 사람이 문묘에 대해 알겠는냐며 주위시선이 따가웠다.
당시 관산읍은 한문 배운 사람들이 많아 문묘장의를 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보다시피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문과 글쓰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붓글씨를 선택하게 됐다.
이 선생은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배워 전라남도 초대작가가 되보고 싶다는 결의로 전국적 명성이 자자한 광주에 기거하신 학정 이돈흥 선생에게 사사를 받게 됐다.
처음 몇 년 동안은 1주일에 한 차례 배우러 다녔으나 실력이 늘지 않자 아예 날마다 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붓글씨의 매력에 빠져 별 보고 올라가서 별을 보고 집에 왔던 시절이었다.
서예를 배우기 위해 광주까지 날마다 가는 것은 작고한 아내 김경애 여사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남편이 밖에 나가서 당당하기를 바랐던 아내의 내조 덕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서예공부에 정진하던 중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1983년 장흥지역 한 원사(향교가 아닌 곳에서 유림들이 모여 지내는 제사)에서 시간이 돼도 축문이 오지 않아 고심하던 차에 주위 어르신들이 이 선생에게 “해보겠느냐”는 말하자 “해보겠다”고 당당히 말하며 나섰다. 이때 분위기는 “오늘 제사를 제대로 할란가 모르겠다”는 어른신들의 걱정섞인 모습으로 긴장했다. 하지만 이 선생은 실수 없이 깔끔한 진행으로 참석자들을 깜짝 놀래게 했다. 그 다음해 장흥향교 장의를 맡게 됐다.
이 선생의 열정은 쉽게 사그라 들지 않았다.
그동안 수십차례 각종 미술대전에 참가, 목민심서 전국서예대전 삼체특선, 전라남도미술대전 서예부문 특선 등 다수의 수상 끝에 2013년 광주광역시 미술대전 추천작가로 선정됐다. 이어 다음해 대한민국기로미술협회 초대작가, 2015년에는 마침내 목표로 삼았던 전라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지정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그동안 써온 수많은 글들 중 가장 좋아하는 글을 추천해달란 부탁에 봉생마중 불부직(쑥대는 휘기 쉽지만 마에서 자라면 곧아진다) 즉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또, 삼인행 필유아사(앞에가는 세사람 중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를 추천하며 항상 새겨두고 살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 선생은 “좋은 글씨란 마음을 다해 쓴 글” 이라며 “무슨 일이든 빛을 보려면 미쳐야 한다(不狂不及)” 며 인생 선배로써 고견을 들려주었다.

 
▲ 가훈써주고 있는 이문갑 선생
▲ 초대작가 인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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