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 정윤식(국립한글박물관 후원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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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 정윤식(국립한글박물관 후원회 정회원)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6.05.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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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와 민족정신의 수호 - 中

▲ 정윤식
고종 32년(1895년) 8월 유길준을 중심으로 한 제3차 김홍집 내각이 성립된 뒤 미국에 망명가 있던 서재필이 새 정부의 고문으로 귀국하였다.
서재필은 고종 21년(1884년) 갑신정변때에 반역으로 몰려 가족이 참살을 당하고 자기는 간신히 미국으로 빠져나가게 되었는데 이번 귀국은 그가 망명한지 11년만이었다.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동녕, 이승만, 주상호(주시경의 어릴 때 이름) 등이 주동이 되어 독립협회를 만들고 1896년 4월 7일부터 〈독립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는데 독립신문은 한글만으로 만들어졌으니 그들은 그 논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난거슨 상하귀쳔이 다 보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뗴여쓴즉 아모라도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난 구절을 뗘여쓴즉 아로라도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난 말을 자세히 알어보게 함미라.
각국에셔난 사람들이들이 남녀 무론하고 본국 국문을 몬져 배화 능통한 후에야 외국글을 배호난 법인대 죠션서난 죠션국문은 아니 배호드래도 한문만 공부하난 까닭에 국문을 잘 아난 사람이 드믈미라.
죠션국하고 한문하고 비교하여 보면 죠션국문이 한문보다 얼마나 나한거시 무어신고 하니 첫재는 배호기가 쉬흔이 됴흔 글이요.
둘재난 이글이 죠션 글이니 죠션인민들이 알어셔 백사를 한문 대신 국문으로 써야 상하귀천이 모도 보고 알어보기가 쉬흘터이라.
한문만 늘 써버릇하고 국문은 폐한 까닭에 국문만 쓴 글을 죠션인민이 도로혀 잘 알어보지 못하고 한문을 잘 알아보니 그게 엇지 한심치 아니 하리요.
또 국문을 알아보기가 어려운 건 다름이 아니라 첫재난 말마대를 뗘이지 아니하고 그져 줄줄 내려 쓰는 까닭에 글자가 우희부터 난지 어래부터 난지 비로소 알고 일그니 국문으로 쓴 편지 한 장을 보자하면 한문으로 쓴 것보다 더듸보고 또 그나마 국문을 자조 아니 쓰난고로 셔툴어셔 잘못 봄이라...
한문 못한다고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국문만 잘 한다고 다른 물졍과 학문이 없난 사람보다 유식하고 놉흔 사람이 되난 법이다(1896. 4. 7)」
이 신문은 우리나라 민간신문의 최초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한글만으로 되어 나왔다는 점으로 이 신문의 발간은 우리나라 신문의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인데 여기에서 그들은 그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글자생활의 모순점을 잘 파헤치고 있다.
상하귀천이 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문을 쓰지 않는다는 것.
우리 글은 쉽고 그리고 이것은 우리글인 까닭에 우리들이 써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한문만 배우고 국문은 도리어 잘 읽지 못하니 한심한 일이란 것.
국문만을 알아도 다른 물정과 학문을 알게 되면 이 사람들은 도리어 한문만 알고도 다른 학문이 없는 사람보다 유식한 사람이 된다는 점들을 지적하고 있으니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띄어쓰기를 해야 함을 느끼고 그것을 실천한 점도 우리나라 글자문화를 위한 커다란 발전이었다.
그 당시의 우리나라 신문제작자들 중에는 한자가 섞이지 않으면 신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낡은 사상은 19세기 말기의〈독립신문〉제작자들의 민중교화의 민주주의적 사고방식보다 뒤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신문이 나오게 된 반면 한편에서는 한문의 말투를 전혀 벗어나지 못한 〈황성신문〉(1898년 3월 창간)이 발행되었다.
과연 이 두 신문 중 어느 것이 민중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어느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한 바른 길이지 새삼 설명할 필요를 우리는 느끼지 않는다.
개화기의 문학활동으로는 신문학의 주인공이었던 소년을 주제로 한 최남선의 ‘海(해) 에게서 少年(소년)에게’란 시가 나오기도 했으나 한글문화의 기수는 역시 소설이었다.
이인지의 ‘혈의 누(血의淚,1906)’ ‘귀의 성(鬼의 聲,1907), 치악산(雉岳山,1908)’, ‘은세계(銀世界,1908)’를 비롯하여 이해조의 ‘자유종(自由鐘,1910)’ 따위는 그 대표적인 작품인데 이 소설들은 아직 옛소설의 묵은 탈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현실적인 사건을 다루었고 그 문체도 완전한 언문일체의 산문으로 되어 있으니 이 점으로 보아 신소설은 현대소설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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