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 일선스님(보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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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칼럼 - 일선스님(보림사 주지)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6.05.15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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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유아독존

대웅전 앞에는 부처님의 머리처럼 봉긋히 솟아오른 하얀 불두화가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마침 다가오는 부처님 오신날을 찬탄하는듯 봉오리마다 켜켜히 꽃잎이 쌓여 나발처럼 거룩한 장엄을 하였습니다.
시내엔 거리마다 연등이 걸리고 축제가 한창입니다.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절에 와서 연등을 달고 마당에서 약수물을 마시며 모처럼 넉넉한 여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산천 초목들은 저마다 빛깔을 드러내더니 어느덧 연두빛 일색으로 화합을 이루고 새들은 고운 목청을 자랑하는듯 다투어 노래 부르며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탄생하자마자 한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며 온 세상이 전부 고통이니 내가 마땅히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고 선언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는 말로써 모든 생명이 본래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는 생명평화의 선언이며 본래 해탈이라는 대자유의 선언입니다.
모든 존재의 고통은 거짖 나라는 아집과 대상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기에 나와 대상이 본래 텅비어 있어 둘이 아님을 깨달으면 모든 생명은 평화롭고 일체 고통에서 해방되어 대자유를 누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아독존의 나는 보통 범부들이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 차별없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본질입니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릴줄 아는 작용의 본체로 일체 생명의 무게는 평등하다고 부처님께서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에 있을때는 참나라고 하며 에고의 나하고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에고의 나는 항상 불만 투성이지만 참나는 언제나 한결같아 나고 죽음이 없고 늘거나 줄지도 않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어서 항상 깨어있습니다.
또한 허공처럼 텅비어 있어 모양은 없지만 신령스럽게 안다고 하여 영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눈에 있을땐 본다고 하고 귀에 있을때는 듣는다고 하며 코에 있을때는 냄새를 맡고 혀에 있을때는 맛을 느끼며 몸에 있을때는 촉감을 느낌니다.
때로는 술한잔 먹고 기분이 좋을 때는 갈지자 걸음으로 거리를 헤메기도하고 때로는 두손 모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나아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작용은 천차만별로 다르지만 본체는 하나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발명하여 마음이라 부르고 사용하는 설명서가 바로 경전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쓰면 대상에 속아 울고 웃으며 생사의 고통을 받기 때문에 범부라 하고 깨달아 알고 쓰면 부처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나 최초로 이것을 깨달아 널리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려고 평생을 길위에서 헌신하다가 마침내 장엄한 열반에 드신 위대한 선각자입니다.
지금 세계의 지성들은 명상을 통한 참마음인 영성의 계발이야말로 자기 구원이며 인류의 새로운 미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에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가정에서 태어나 삼류대학에 들어갔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인도로 가서 명상을 배웠습니다.
마침내 부처님의 가르침인 유아독존에 눈을 뜨고 손바닥처럼 간단한 본체에 일체 작용을 융합하는 스마트폰을 만들어 새로운 혁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손가락을 움직일줄 아는 참마음을 망각하고 손가락에 집착하여 나타나는 편리한 작용만 취하는 어리섞음으로 인하여 인간의 고통은 그칠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손가락을 움직일줄 아는 참마음을 명상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일체 고통에서 해방되고 모든 이웃들을 부처님처럼 존경하고 받들어 모시는 보살행이 우러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미래의 부처입니다.
탐진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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