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부처님 오시는 날(釋迦誕辰日)
상태바
장강칼럼 - 부처님 오시는 날(釋迦誕辰日)
  • 장강뉴스
  • 승인 2024.05.13 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일중 논설위원
최일중
최일중

 

꽃은 잎이 되고 그 잎은 다시 꽃이 되는 5월이다. 낮에는 신록이 산하를 장엄하고 밤에는 연등이 천지를 밝히는 천등만화(天燈萬花)가 부처님 오신 날을 환희로움으로 경하하도다.

음력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 오신 날로 해마다 전국 각 사찰에서 석가모니의 탄신을 봉축하는 연등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른다.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하여 봉축연등행사의 의미와 우리의 마음가짐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연등행사의 역사는 불교가 왕성했던 삼국시대 그중에서도 신라 때부터 고려조에 이르기 까지 계속되어온 우리 민족의 세시풍습이었다.

특히 연등회는 신라 경문왕 6년(866) 정월 보름에 왕이 흥룡사에서 간등(看燈)하고 백관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와 신라본기 등에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연등회와 팔관회가 시행할 것을 유훈으로 남겼다.

고려사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1167년(의종21)부터이다. 조선왕조는 불교를 탄압하였으므로 연등회와 팔관회 같은 불교의례가 축소되거나 철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불교는 신라로부터 고려를 거쳐 이미 백성들의 종교로 뿌리를 깊게 내려 그리 쉽게 혁파하지 못하였다.

불교 배척은 신흥유학자들의 주장이었을 뿐 현실적으로 궁궐에 내불당을 두는 등 예불을 온전히 단절시키지 못했다. 연등풍속이 얼마나 뿌리 깊은 민속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연산군이 관등한 기록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왕이 미복으로 잠행하여 경회루에 올라 만세산을 배설하고 관등하였다. 잔히후에 승전원으로 하여금 들어와 보게 하였는데 밤 2시경이었다.

이처럼 초파일 연등행사는 우리민족의 역사문화요, 전통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도 초파일 연등행사는 오랜전통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만 우리가 꼭 알아두고 챙겨야 할 것은 초파일에 왜 등불을 밝혀야 하는 것인지 그 의미이다.

첫째 부처님 당시 빈자의 등불처럼 비록 가난한 자의 등불이었지만 새벽녘가지 꺼지지 않았던 그 믿음 곧 신앙의 등불이어야 한다.

둘째 우리 마음의 어둠(무명우치)을 밝히는 지혜광명 곧 깨달음의 등불이어야 한다.

셋째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자비 보시의 등불이어야 하며 넷째 우리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는 것 등이다.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깨달음이다. 하지만 깨닫고 실천하지 않으면 도로 아미타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3천년 전 인도 카필라국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고오타마 싣달타 태자가 29세에 출세하여 히말라야 우리빌라 숲속에서 설산수도 6년을 거쳐 깨달음을 얻어 80세 열반에 드실 때까지 고구정녕 오직 중생교화를 위해 일생을 바쳤던 것만큼 우리도 부처님처럼 사회에 환원하는 깨달음의 사회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3대 강령인 자비와 보은 평등의 사상을 실천궁행하는 것이고 불법승 삼보를 믿고 따르는 것이며 초파일 연등법회에 필히 참석하여 우리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이 우주 생성도 마찬가지이고 천 가지, 만 가지가 그물망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 무엇 하나라도 흩으로 동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불경인 잡아함경 12권에서도 이 연기법에 대해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셨던, 안하셨던 항상 존재한다. 부처님은 이 연기법을 깨달아 해탈을 성취하셔서 중생을 위해 분별설법하여 깨우쳐 주셨던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을 우리 마음으로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도의 실천이다. 이렇듯 중도란 매사에 즐거움을 창출해 내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정성과 정열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의 티끝을 떠나서는 우주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철저히 느끼고 작은 일이라도 성취하다 보면 큰일도 성취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에 어느 곳 처에 있어도 원대한 원(願)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지혜를 만들어 내어 힘들지만 능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늘 자기가 노력을 기울리고 자기의 정성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람은 바로 덧없는 세상일지라도 영원하게 살 수 있는 것이며 고통스런 처지에서도 즐거움을 맞이하는 길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매사에 반야지혜로 항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중도를 생활화한다.

먼지 같은 마음의 번뇌망상을 다 헤아려 알고 큰 바닥 물을 다 마셔 버리고 우주의 넓고 넓은 마음을 다 잣대로 재고 흔들리는 바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동아줄로 꼭꼭 묶는 재주가 있어도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베풀어 주신 무량무변 공덕을 다 헤아릴 수 없음이니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