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김미봉(강진군보건소 건강증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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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김미봉(강진군보건소 건강증진팀장)
  • 장강뉴스 기자
  • 승인 2016.03.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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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申師任堂) 그는 누구인가? - 上

▲ 김미봉 (강진군보건소 건강증진팀장)
사임당(본명:평산인 申仁善)은 1504년 연산 10년에 아버지 신명화(申命和)공과 어머니 용인이씨(龍仁李氏)의 무남 5녀중 둘째따님으로 강원도 삼척지방 북평촌(北平村)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남존여비적 유교사상이 투철한 사회였기에 여성은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던 시대였다.
다만 여성은 가정살림과 예의범절을 중요시 했고 언문(한글)편지를 쓸 정도면 훌륭한 규수 감으로 여겼다.
출가해서는 조상과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남편에게 순종하며 아들 낳아 가문의 대(代)를 잇게 함을 부덕(婦德)으로 생각했을 뿐 높은 학문이나 예술계통을 가르친다는 건 고관대작 가정에서 더러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사임당은 아버지와 외조부(李思溫)에게 5세 때부터 글을 배웠다.
7세 때에는 세종시대에 인물화(人物畵)의 대가인 최경(崔涇)과 산수화의 대가 안견(安堅)과의 화풍(和風)을 본받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고, 서예, 자수 등에도 뛰어난 예술가 였다.
학문은 사서(四書)와 경전(經典)에 이르는 높은 수준과 아울러 시(詩 ) 문장(文章)등에 경지를 초월한 위대한 여성이었다.
그 뿐 아니라 부모에겐 지극한 효녀였고 남편에겐 어진 아내로서 열성적으로 내조를 했으며 그 자녀 7남매의 엄격한 스승이요 자애로운 어머니였다.
신사임당이 학문에 정진했던 사실은 그의 다음 시(詩)에 잘 나타나고 있다.
개권대월(開卷對越) 혁약유림(赫若有臨) 연수부족(年數不足) 출연필경(?然必驚)
책을 펼치면 성인(聖人)을 대하다. 확연히 곁에 계신 듯하다. 뜻하는 계획은 매우 크건만 횟수가 모자라니. 문득 몸이 옴칫하고 마음이 항상 놀랍도다.
사임당은 높은 학문과 예술에도 탁월했기에 (사임당의 그림 보물 제 595호 지정)자녀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되 자연의 이치와 인성(人性)교육에 주력한 엄격한 스승이었다.
특히 장녀 매창(梅窓)은 학문과 예술성이 뛰어나 그의 그림이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3남 율곡(栗谷)은 당대의 대학자이며 경장(更張)사상을 주장한 개혁적 정치가였으니 오늘날에도 위대한 경세가(輕世家)로써의 사표(師表)로 추앙 받고 있다.
특히 율곡은 3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해서 8세 때에는 율곡리 화석정(花石亭)에 걸린 시(詩)를 쓸 정도의 천재이기에 이후 아홉 차례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해서 구도장원(九度壯元)이라 일컫는다.
사임당은 자녀들에게 자상한 어조로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벼슬함이 목적이 아니라 깊고 높은 학문을 익혀 세상이치를 터득하여 자아실현에 힘써 보다 큰일을 하는 것이라고 훈도(訓導)했다.
이는 사임당의 생활신조이고 철학적 사상이며 확고한 인생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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