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모란은 또 피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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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모란은 또 피고 지고
  • 장강뉴스
  • 승인 2023.05.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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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데일리임팩트 주필,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임철순
임철순

당 14대 황제 문종 때의 재상 서원여(舒元輿, 791~835)는 ‘모란부()’라는 글에서 “꽃의 가장 빨간색은 모란으로 다 모였네.”[英之甚紅 鍾於牧丹]라고 했다. 동시대의 시인 방간(方干, 809~888)도 “나뉜 꽃은 가볍게 연지 바른 얼굴/떨어진 잎은 짙게 분 바른 뺨”[]이라고 노래했다. 모란은 비범한 향기와 화려한 색깔로 인해 국색천향(國色天香), 화왕(花王), 부귀화(富貴花)로 불려온 꽃이다.

곡우 무렵 이미 시작된 화왕의 낙화

그 모란이 올해에도 또 피었다가 졌다. 모란은 4월 20일 곡우 즈음에 핀다고 곡우화(穀雨花)라고도 하는데, 점점 개화가 빨라져 올해 그 무렵엔 오히려 지고 있었다. 모란꽃은 화려하고 풍성하지만 피어서 질 때까지 20여 일에 불과해 오래 볼 수 없다. 그래서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한 걸까. 모란에 미친 당나라 사람들은 꽃이 피면 “만 마리 말과 천 대의 수레로 모란을 보러 간다”[萬馬千車看牧丹]고 했는데, 열광이 컸던 만큼 꽃 진 뒤의 아쉬움과 허탈도 컸을 것이다.

봄이 되면 꽃을 반기는 사람들이 자기만 발견하고 알아낸 것처럼 꽃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거나 SNS에 올린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더 그런다. “꽃을 죽도록 사랑해서가 아니라 꽃 지면 늙음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뿐”[不是愛花卽欲死 只恐花盡老相催]이라거나 “나날이 늙어가니 봄을 몇 번이나 맞을까?”[漸老逢春能幾回]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둘 다 두보의 시구임), 그래서 나도 비에 젖은 마당의 모란꽃을 사진 찍어 남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들이나 나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낙화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마음에서 그런 거지만 남에게 이끌려 꽃을 찬탄하는 게 귀찮고 성가신 일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누가 10여 장씩 사진을 보내오면 이내 지워버리거나 “다만 한 가지 걱정은 꽃이 (당신 같은) 노인들 위해서 핀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但愁花有語 不爲老人開]이라는 유우석(劉禹錫)의 시를 보내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최근엔 “늙은이는 머리 위에 꽃 꽂고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꽃은 응당 늙은이 머리에 있기 부끄러우리.”[人老簪花不自羞 花應羞上老人頭]라는 소동파(蘇東坡)의 시를 알게 돼 써먹으려고 벼르는 중이다.

모란이 지고 나면 작약이 핀다. 비슷해 보이는 두 꽃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고와서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 이리 봐도 아름답고 저리 봐도 아름답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모란은 나무, 작약은 풀인 게 다른 점인데, 겨울이 되면 작약은 땅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땅속에 숨어 봄을 기다린다.

이제 작약이 이어받아 피어날 차례

여러 가지 꽃이 봄을 맞아 차례로 피어나는 걸 춘서(春序)라고 한다. 소한(小寒)에서부터 곡우까지 스물네 번 꽃소식을 전하는 꽃바람이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다. 이 120일 동안 닷새마다 차례로 스물네 번의 서로 다른 꽃소식을 전해 주는 바람이 불고, 그에 맞춰 꽃이 차례로 핀다. 매화꽃이 가장 먼저 피고 모란꽃이 가장 늦게 핀다.

그러나 이 봄의 질서, 춘서는 이미 문란해진 지 오래다. 여러 꽃이 동시에 피어난다. 벚꽃도 일찍 피더니 4월 초에 벌써 지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2월에 벚꽃이 필 거라는 기상 예측도 들린다.

다만 작약은 서두르지 않고 잠잠히 모란이 이울기를 기다린 다음 제 차례에 맞춰 꽃잎을 연다. 그렇게 믿고 싶다. 중국 송나라 때의 박물사전 ‘비아()’에 “모란은 꽃 중의 왕이요, 작약은 꽃 중의 정승이다.”라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즉 화왕과 화상(花相)이다. 그런 다소곳한 작약의 자세를 기리고 싶다. 모란이 한 일을 작약이 이어서 하는 이런 되풀이는 내년에도 거듭될 것이다.

그러니 꽃이 지는 걸 아쉬워하고, “모두 다 거짓말이라며 봄은 달아나 버렸다.”(일본 하이쿠시인 타네다 산토카)고 탄식할 것도 없다. “봄날은 간다”는 말은 “봄날은 온다”는 말이다.

누가 지은 건지 모르지만 이런 5언시가 있다. “세상에서 하고 하는 일이란/해도 해도 다 하지 못한다/하고 하다가 사람이 떠난 뒤에는/오는 사람이 다시 하리라.”[世上爲爲事 爲爲不盡爲 爲爲人去後 來者復爲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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