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송영건 선생과 떠나는 차(茶) 이야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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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송영건 선생과 떠나는 차(茶) 이야기⑤
  • 장강뉴스
  • 승인 2022.05.0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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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송(蔎松)의 차 이야기
송영건 선생
송영건 선생

◇ 차 문화는 아름다움(美)을 완성시키는 문화

차를 만드는 차나무는 깊게 뻗은 뿌리로 지기를 모아 새싹에 영기(靈氣)를 간직하는 신령한 나무로 인류가 아껴 왔다는 것을 앞 글에서 살펴 보았다.

이 글에서는 차나무, 그리고 차는 신령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의 표상이라는 것을 말해 보고자한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차 문화는 아름다움을 완성시키는 문화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동다송(東茶頌) 첫 구절은 후황가수배귤덕(后皇嘉樹配橘德)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가수(嘉樹)라는 말은 천성이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이다. 즉 거짓이 없고 참되며 질서와 조화가 있다 라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1.2.3등을 진∙선∙미로 나누고 진에게 1등을 부여하지만 실은 진선미는 통합되어 있는 있는 개념이고 진과 선이 선행해야 최종적으로 아름다움으로 마무리된다 할 수 있다.

이를 식으로 나타내면 진(眞;참, 참된 것)〈 선(善;질서, 조화)〈 미(美;아름다움)가 되고, 미스코리아는 진(眞)을 1등으로 세웠지만 아름다움은 이 모두를 포괄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움(美)이 으뜸이다.

진(眞)은 말 그대로 참된 것으로서, 참된 것은 아름답고 반면에 거짓은 추악하다. 선(善)은 질서와 조화를 말하는데, 질서가 있고 조화로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고 어지럽고 혼탁한 것은 추하게 느낀다. 따라서 진과 선이 온전할 때 사람들은 제대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진(眞)은 사회적으로는 정의라 할 수 있고 선(善)은 사회적으로 도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도덕과 정의라는 양대 기둥이 바로서게 되면 법치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사회가 아름답게(美) 된다.

▶ 차는 거짓 없는 참됨과 소통과 배려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바탕.

우리가 사람의 외양을 보고 멋지다, 예쁘다 라고 느끼는 것은 얼굴이나 모습이 질서와 조화가 있다는 관능적 표현이다. 수학적으로는 황금률(1:1.618)의 비율로 배열되면 조화롭고 아름답다고 느낀다 한다.

미적(美的) 감각중추가 움직이면 엔도르핀과 같은 활성 에너지가 작동한다.

우리는 모두 아름답고자 하고 또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산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완성하시키려고 이 세상에 왔다. 불교적 아름다움의 극치는 깨달아 성불(成佛)하는 것이고, 기독교적으로는 신성(神性)을 회복하는 것이요, 도교적으로는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름다움은 신(神)의 한 속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애써야 하고 아름다워 져야 한다.

차는 이 로정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 이자 아름다움의 반려자가 될 것이다. 산천 김명희 선생의 시 사차(謝茶)의 한 구절에서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다고 들었는데(曾聞佳茗似佳人)』라는 표현이 나온다.

좋은 차로 스스로를 소통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소통시키며 상대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우리 고을에 향기처럼 퍼지기를 소망해 본다.

법구경 한구절로 글을 마무리 한다.

『 선한 것(아름다운 것)은 잘 드러나 보인다. 마치 히말라야 설산이 멀리서도 잘 보이는 것처럼. 사악한 것은 가까이서도 볼 수 없다. 마치 어둠 속을 날으는 화살을 볼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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