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장흥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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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장흥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16)
  • 장강뉴스
  • 승인 2022.04.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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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면 삼정마을 정연주 ․ 문연심 부부이야기

장흥군은 현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한국전쟁 전후 장흥에서 벌어진 민간인 피해자 진실규명 조사·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라 진실규명신청서를 작성하여 관계 기관에 접수한다. 이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사)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기록팀은 본지 지면에 이 아픈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

삼정마을 자택 앞에서_정연주〮 문연심 부부
삼정마을 자택 앞에서_정연주〮 문연심 부부

 

“인자, 살만치 되니 갈 때가 되얐어”

장평면 삼정마을 정연주  문연심 부부이야기

1996년 장흥문화원에서 발간한 『장평면지』 584쪽을 보면, ‘마을의 주요 사건’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6.25사변 때 이데오르기의 대립으로 무고한 마을사람 5명이 하루 저녁에 피살당하여 마을 전체 주민이 한동안 크게 고통을 당하였음’, 단 두 줄, 아주 단순하다.

이 단순한 기록에는 어떤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옷을 벗으면 이들이 드글드글 했어, 하도 배고파서 굵은 뚱니를 뚝뚝뚝뚝 깨물어 먹었당깨, 놈의 집 밖에 내 놓은 구정물통에서 손을 휘휘 저어 손에 잡히는 배 껍질이나 사과 껍질도 건져 먹었재, 묵을 것이 있어야재, 장흥 동교다리 밑에서 자기도 하고 그때는 동냥치들이 많았어, 이 집 저 집 바가치 들고 다니면서 얻어 묵었지, 안 죽을라고... 한 3~4년을 그라고 살았어.”

거지꼴을 면하지 못했던 유년시절, 터져 나오는 분노와 설움을 겨우 견디며 이야기하는 정연주(1941년생)씨의 진술이 뜻밖으로 침착하고 냉정하다. 담담하게 듣고 있는 아내 문연심(1945년생)의 붉은 눈시울은 왜 이렇게 어둡고 깊은 것인가? 간혹 핏기가 서리는 그들의 아픈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장동면 감나무재_당시 학살현장에서 증언하는 정연주씨
장동면 감나무재_당시 학살현장에서 증언하는 정연주씨

 

■첫 번째 이야기_감나무재 민간인 학살 사건

1950년 6월초, 전남 장흥군 장평면 내동리 삼정마을에 살던 살래댁(택호, 성명미상)은 장평 어곡마을에 살던 친정어머니와 함께 밭(소리재 넘어가는 지도밭)을 매면서 ‘동네사람 4명이 반란군에게 고춧가루를 거둬서 줬다‘는 얘기를 하게 되는데, 우연히 대화 내용을 들은 살래댁의 아들 재수(당시 장평면사무소 산업계장)가 이 사실을 장평지서에 신고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갑자기 마을에 들어 온 경찰들은 마을사람들을 논두렁(현 삼만이 집터 앞)에 불러 앉혀놓고 그 중 네 사람을(정점식, 염도식, 김이백, 정대식)을 호명하여 연행해갔다.

그들 중 정점식(1909년생)은 마을 앞 논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마을에서 이장도 하고 반장도 하고 야물어서 말 한자리씩 했던 사람들이었으며 단지 살기위해 밤손님들에게 고춧가루를 거둬서 준 것인데 부역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이에 정점식의 가족들은 그를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썼고, 결국 경찰은 ‘쌀 8가마니를 가져오면 풀어주겠다’라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의 아버지 정해창(1886년생)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쌀이 아까웠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모색 중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정점식의 아들 정연주(1941년생)는 당시 할아버지가 항아리에 엽전을 한가득 묻어놓고도 쌀 8가마니가 아까워서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며 아직도 원통해하고 있다.)

삼정마을_경찰이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4명을 지목하여 연행한 곳(당시는 논)
삼정마을_경찰이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4명을 지목하여 연행한 곳(당시는 논)

 

1950년 6월 10일(양력 7.24), 장평지서에 구금되어있던 사람들은 끌려나가 배산에서 장흥 넘어가는 갑낭재(감나무재)에서 희생당한다.

인민군이 장흥군을 점령하게 되자 장평지서 경찰들이 후퇴하면서 저지른 학살인데 내동마을에서는 정점식을 포함하여 염도식, 김이백, 정대식 등 4명이 회생되었다.

다음날 그의 동생인 정봉회(1930년생)와 마을사람들이 사건현장으로 달려갔다. 길 옆 움푹 들어간 곳에 총상을 입은 8~9구의 시신이 너부러져 있었다. 그들은 정점식의 시신을 수습하여 거적에 둘둘 말아 지게로 지고 와서 집 앞 모통이에 가매장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점식의 아들 정기수(1934년생)는 아버지의 죽음이 하도 원통하여 지방좌익에 동조하며 입산해버린다. 1950년 11월 13일(양력 12.21), 갑자기 들이닥친 고두석(생년미상) 일행은 잠시 집에 와 있던 정기수를 연행해갔다.

함께 있었던 동생 정재덕은 이불장 안에 숨어있던 탓에 살아날 수 있었다. 복흥마을에 살고 있던 고두석은 입산했다가 경찰이 수복하자 자수하여 임리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주요 임무는 입산했을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을 잡아들이는 일이었다.

고두석은 수시로 집에 찾아와 정기수를 찾아내라며 가족들을 괴롭혔다. 어느날은 빨치산이 봉화 불을 피웠는데 거기에 누가 가담했는지 물으며 당시 10살이었던 정연주까지 끌고 가 몽둥이로 때리며 폭행을 가하였다.

그러던 중 정기수의 움직임을 포착한 것이다. 아들이 잡혀가자, 정기수의 어머니 문애순(1910년생)은 베를 짜다 말고 지서에 달려가 아들의 안위와 행방을 물었지만 헛수고였다. 그날 이후 정기수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문연심씨 가족 학살 현장_부산면 심천마을과 지천리 사이 탐진강(기역산 앞 갓골마을 앞 강)
문연심씨 가족 학살 현장_부산면 심천마을과 지천리 사이 탐진강(기역산 앞 갓골마을 앞 강)

 

■두 번째 이야기_ 노둣길 한가족 학살 사건

1950년 10월, 전남 장흥군 유치면 신풍마을에 살던 문재철(1920년생)은 어머니를 포함하여 일가족 7명과 함께 처가가 있는 부산면 용반리로 피신한다.

마을이 곧 소개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미리 움직이는 것이 더 안전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처가와 함께 용반리에 살고 있던 처재의 남편은 경찰이었기에 몹시 불편했다.

1950년 12월 5일(양력 1951. 1.12), 문재철(1920년생)의 가족 7명은 고향인 유치면 신풍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점점 눈치가 보이고 가족이 배를 곯은 날이 많아지자 독에 담아 숨겨둔 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용반리를 출발한 문재철의 가족이 유치면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마을 뒤편 작은 고개를 넘어 기역산 골짜기 아래 냇가 노둣길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산에서 내려 온 서너명의 경찰들이 일가족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당시 희생자는 문재철을 포함하여 어머니인 김양례(1884년생), 처 최외남(1923년생), 둘째아들 문희상(1947년생), 둘째 딸 문00(1949년생, 제적미등재)로 일가족 5명이다. 함께 있었던 장남 문동일(1942년생)과 첫째 딸 문연심(1945년생)은 걸음이 느려 한참 뒤쳐져 있던 중이라 살아날 수 있었다.

이때 살아남은 첫째 딸 문연심의 증언에 따르면, 오빠와 둘이 한참 뒤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불이 뻐뜩뻐뜩 빛났다고 한다.

함께 있던 오빠 문동일은 동생 문연심을 놔두고 혼자 죽어라 뛰어 이모집으로 도망가 버렸고, 혼자 남은 문연심은 공포에 질려 냇가 옆 자갈밭에 엎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추운 것도 잊은 채 밤을 새운다.

평면 삼정마을
평면 삼정마을

 

다음날 아침, 이모 집에 들어서자 이미 마을에는 ‘일곱 식구가 유치 신풍으로 가다가 다 죽었네’, ‘유치 반란군 밥 해주러 가는 줄 알고 죽여 버렸다네’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한다.

경찰들은 문재철의 가족을 적대세력으로 오인하여 젖먹이까지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당시 외할머니와 이모 등이 시신을 수습하여 사건 현장 옆 냇가에 묻고 돌맹이로 쌓아 가매장했다.

한국전쟁 속에서 가족을 잃고, 동냥치 생활과 머슴살이를 했던 소년 정연주와 길쌈을 하고 베를 짜 장으로 팔러 다녔던 소녀 문연심. 마을 당골(무당)의 소개로 만나 함께 살아온 세월이 60년이다. 누구보다 당당하기에, 살기위해 ‘온몸으로 부딪혀야만 했던 생애’가 서운하지만은 않다.

“인자, 살만치 되니 갈 때가 되얐어”

문연심씨가 한마디 한다. 이 기막힌 쓸쓸함 앞에서, 추위도 잊은 채 공포에 떨며 홀로 밤을 새운 72년 전 어린 여자아이를 생각했다. 시대의 폭력성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으려니 소름이 돋는다.

그래, 이제라도 말할 수 있어 다행이지 않은가?

그녀의 붉은 눈시울이 지닌 표정과 빛깔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제공:장흥문화공작소 역사문화기록팀/사진:마동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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