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아무나 하는 문화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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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아무나 하는 문화부장관
  • 장강뉴스
  • 승인 2022.03.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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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데일리임팩트 주필)

2월 26일 타계한 이어령 선생은 우리 문화행정의 초석을 놓은 분이다. 1990년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로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국어연구원을 설립하고, 갓길 나들목 같은 말을 만들어 냈다.

임칠순
임칠순

이런 구체적 업적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문화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취임 직후 발표한 문화행정 지표로는 ‘문턱 없이 일하기’, ‘생색내지 않고 일하기’, ‘사심없이 일하기’ 등의 삼불원칙과, ‘마른 바위에 생명의 이끼 입히기’, ‘문화우물터에 하나의 두레박 놓기’, ‘부지깽이 되기’의 삼가원칙을 내세웠다.

문화인들이 지향하고 문화행정이 추구해야 할 의미론이 담긴 지표였다. 문화부장관이 어때야 하는지 전범을 보여주었던 그의 타계는 문화부와 문화부장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산만한 문화부, 장관 기용에도 문제

문화부는 기구했다. 1968년 발족된 문화공보부가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89년 12월 말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된 데 이어 1990년 1월 3일 문화부가 신설됐다.

그런데 불과 3년 뒤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3년 3월 문화체육부로 바뀌더니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때 문화관광부가 되고, 이어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08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로 몸집이 더 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한 지붕 세 가족’은 시너지효과를 내기보다는 잡음이 들리거나 산만한 운영으로 인해 문화행정의 신뢰를 얻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역대 대통령들의 문화나 문화부에 대한 무신경 무관심이었다. 수시로 기구와 소관업무를 바꾸고 문화행정과 거리가 먼 인사를 장관에 기용하는 사례가 잦다 보니 문화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조직, 문화부장관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문화부장관에는 집권당의 국회의원(정치인)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역대 장관 중 내부 관료 출신을 기용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 유진룡 장관이 처음일 정도였다.

장관이 꼭 문화부 출신 인사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성이나 업무의 연속성에서 경제관료나 정치인 등 외부인사보다는 당연히 낫다.

그나마 장관들의 재임기간이 짧아 2년 이상 넘은 사람이 거의 없다. 원래 아무나 시켜도 되는 자리인데 자리를 챙겨줘야 할 그 ‘아무나’가 줄을 서고 있으니 적임 여부는 따지지도 않게 된다.

그렇게 임명된 장관들은 문화 체육 관광 등 문화부의 소관 업무에 ‘얼굴’을 내미는 행사가 많아서 이곳을 사전 선거운동을 위한 자리쯤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1901~1976)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해 샤를 드골 장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 뒤드골의 첫 번째 내각에서 임시 공보장관을 맡았고 1958년 다시 드골 밑에서 10년 동안 제5공화국 초대 내각의 문화부장관으로서 혁신적인 문화행정을 펼쳤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임명권자의 문화의식과 인사정책이다. 문화부장관을 임명할 때 문화적 감수성 창발성, 전문 경력 등을 두루 살펴 인선을 하고 임명한 뒤에는 소신껏 충분히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문화행정이 제대로 될 수 있다.

문화부총리로 격상해 더 발전시켜야

올해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해이다. 20대 대선이 끝나면 5월에 새 대통령이 취임할 텐데, 문화적으로는 달라지는 게 뭐 있을까? 그런데 대선 후보 토론회도 문화부문은 열리지도 않았고, 각 후보의 문화정책에도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이슈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새로 대통령이 되는 분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1)문화부를 노태우 정부 때처럼 독립된 부서로 운영하고 2)문화행정의 발전을 위해 문화부총리를 신설할 것 3)문화부총리에는 정치인이 아니라 문화예술인이나 문화교육자 등 행정력을 갖춘 사람을 임명할 것 등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정책과 행정을 정착시켜야 한다. 편파적이거나 블랙리스트 적용과 같은 차별·배타적 행정이 재연되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을 문화부총리로 임명해 소신대로 자율적 인사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요컨대 아무나 문화부장관을 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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