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남에게 좋은 것 주면 나에게 돌아온다(汝好授我還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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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남에게 좋은 것 주면 나에게 돌아온다(汝好授我還來)
  • 장강뉴스
  • 승인 2022.02.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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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면 그 비운 만큼 반드시 채워진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면 준만큼 더 좋은 것이 나에게 채워진다.

최일중
최일중

살다 보면 남에게 과도한 기대를 내 멋대로 던져 놓고 기대에 상응하는 결과가 돌아오지 않아 서운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내가 왜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고 과도한 기대를 부여하며 나 혼자 기뻐하고 나 혼자 실망했던 때가 반드시 돌아온다.

나에게 기대를 하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나에게 기대하는 나를 충족한다. 한창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와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1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애완 강아지 마냥 사람을 좋아해 그런 부르면 부르는 대로 부르지 않으면 내가 졸졸 쫓아다니며 문어발식 인간관계에 탐닉하던 시절이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는 종교적 믿음이 갑자기 생기는 것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그것을 좋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과론의 법칙을 따를 때가 많이 보인다.

그리하여 내가 왜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고 과도한 기대를 부여하며 혼자 기뻐하고 나 혼자 실망했던 때가 많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본다면 심리학에서는 어떠한 결핍 때문이라고 답을 찾는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특정한 시기를 함께 보냈다는 이유로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뛰었던 추억을 이유로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고 애정하며 안타깝지만 자연스럽게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타인에게 기대를 품는 것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 복권은 당첨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낮다. 아니 도대체 당첨이 되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 혹시나 하는 아주 작은 기대감에 내 지갑 속의 오천원 만원을 툭툭 털어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어 보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게임에 참여한다. 혹자는 적은 비용으로 내일의 희망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생각하면서 만족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은 확률이 매우 높은 도박에 지속적으로 비용과 마음을 쏟는 일은 언젠가 자기 파괴나 더욱더 커다란 절망을 가져올 것처럼 보여 우려스럽기도 하다.

타인에게 기대를 품는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복권을 구매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해본다.

나의 시간과 비용을 들어가며 기대를 한껏 해보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순간 문득 느끼게 되었을 때 한없이 밀려오는 서운함과 실망감을 표나지 않게 감추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사랑하는 이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듯 우리는 친구에게 가족에게 동료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서운하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그만큼 마음을 주었기 때문일 때가 많다. 내가 준 마음이 크면 클수록 서운함의 강도 역시 커질 확률이 높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이며 그러한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대로 어떤 한 인간에게서 존경이나 대견함 애틋함을 느껴 버리듯 탓에 그 사람을 애정하게 되고 그 애정은 부지불식간에 슬픈 결말을 예고하는 기대라는 덫을 기어코 잉태하고야 만다.

기대하지 말자, 마음을 비우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대하는 마음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어찌 제거하고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차라리 기대감을 나에게도 돌려 보는 것은 어떨까.

타인을 내 마음과 내 기준에 맞출 수는 없다. 나의 기대 대로 움직이지 않는 타인에게 실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을 에너지를 내 안으로 쏟아부어 나에게 기대를 품는 일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나에게 기대하는 일은 적금을 드는 것과 같다. 적금은 원금을 보장한다. 반드시 되돌아온다.

나에게 기대를 하는 일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나에게 기대하는 나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 분명하다.

비록 그것이 작심삼일은커녕 작심 세 시간이 될지라도 기대하는 다른 실망 시키지 않으며 노력 시키지 않으며 노력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나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외로운 사람은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일곱 번 생기고 어부는 바다에서 일곱 번 돌아오지요.

마감 시간을 맞추기에는 너무나 짧지만, 세상을 창조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요 감기에 걸릴 건강을 회복하지만, 꽃병 속의 장미는 죽음을 맞이하지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일주일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일주일이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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