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다산의 충서(忠恕), 내 마음을 조율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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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다산의 충서(忠恕), 내 마음을 조율하는 공부
  • 장강뉴스
  • 승인 2022.01.1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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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논어』의 공자 발언은 유교적 황금률로 잘 알려져 있다.

백민정 교수
백민정 교수

공자는 타인이 자신에게 행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나 역시 타인에게 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공자가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로 제시한 행위준칙은 그의 제자들에게 충서(忠恕)의 가르침으로 전해졌다.

충서란 무엇인가? 동아시아 사유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주희(朱熹:1130-1200)의 해석 탓에 ‘충’은 자신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盡己]으로, ‘서’는 자신을 타인에게 미루어 적용하는 것[推己及人]으로 이해되었다.

주희가 생각한 충서란 내 마음의 진실성에 근거해서 타인을 대우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가 강조한 ‘서’는 내가 아니라 타인을 다루는 방법을 의미했다.

이것은 나에게 선함이 있으면 타인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나에게 악함이 없으면 타인에게 그 악함을 없애도록 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주희는 ‘서’의 방법이 상대에게 선할 것을 요구하고 상대에게 불선을 책망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진실한 마음[=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그가 ‘서’를 타인을 교정하고 훈육하는 행위로 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을 연마하고 수양하는 과정

다산(茶山 丁若鏞:1762-1836)에게 충서란 무엇이었을까? 그가 말한 충서란 ‘진실한 서’를 의미했다. 그런데 이때 ‘서’는 남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훈련하고 닦는 공부를 뜻한다.

말하자면 다산은 타인에게 미루어 적용하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조율하는 공부에 주목한 것이다.

그는 “서(恕)라는 것이 본래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自治]인데 이것을 거꾸로 잘못 말하면 간혹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治人]에 가깝게 된다”고 우려한다.

다산은 옛 성현이 말하는 ‘서’는 우리가 남에게 선함을 요구할 때 자신에게 먼저 그것이 있도록 노력하고, 남의 잘못을 비판할 때 자신에게서 먼저 그것을 없애도록 노력하는 태도라고 이해했다.

이 점에서 다산은 주희가 제시한 충서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충서란 순수하게 자신을 닦는 내 마음의 공부인데 주희가 이것으로 남을 다스릴 것을 요구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더구나 다산은 남을 교정하고 가르친다는 의미의 치인(治人)도,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으로 내가 그 사람을 섬기는 행위[事人]일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남을 섬기려고 할 때 내가 남에게서 바라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지 못하면, 오히려 나의 행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요컨대 핵심은 ‘서’의 의미가 나 자신을 수련하고 조율하는 데 있지, 내가 타인에게 선을 요구하고 불선을 책망하도록 강제하는 데 있지 않다는 말이다.

타인관계는 내 자신과의 화해로부터

서(恕)의 행위준칙은 유교의 윤리학, 도덕철학의 핵심을 밝히는 매력적인 주제로 부각되었다.

충서의 논리는 특수한 도덕률에 한정되지 않고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인 행동원리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간 유교의 충서론은 동서양의 보편적 황금률로 해석되거나 혹은 칸트(Kant, Immanuel:1724-1804) 도덕철학의 정언명법과 함께 평가되었고, 서구 자유주의 전통의 정치철학과 비교되기도 했다.

충서를 타자에 대한 상호 존중과 배려, 공감과 관용으로 풀이하는 현대적 해석들도 등장했다. 물론 유교적 문맥에서 ‘서’는 차이나 다름에 대한 용인과는 구별된다.

유학자 다산은 왜 ‘충서’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이라고 보았을까? 그는 타인에 대한 대처, 인간관계의 기본은 우선 자신에게 열쇠가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타인관계는 내 자신을 돌보고 나를 수련하고 변화시키는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다산은 인륜 관계에서 상대에게 ‘서’를 실천하는 것이 자수(自修), 즉 자기 연마와 수양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타인관계가 내 자신과의 관계, 즉 내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비추는 거울임을 의미한다. 임인년(壬寅年) 새 해가 밝았다.

나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바라고 희구하는가? 나는 자신과 어떻게 화해하기를 원하는가? 타인관계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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