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반포지효(反哺之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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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반포지효(反哺之孝)
  • 장강뉴스
  • 승인 2021.06.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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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어미에게 받은 만큼 늙은 어미를 먹여 사리는 까마귀의 효성을 말한다. 까마귀를 효조(孝鳥)라 부른다. 봄에는 어미에게 먹이를 얻어먹지만, 늦가을이 되면 어린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를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최일중
최일중

깃털의 색깔이 검다느니 하여 우리 이야기의 나쁜 이미지만 잔뜩 심어준 까마귀에게 그러한 미덕이 있다 하니 의아할 뿐이다. 죽어가는 부모님을 위해 단지(斷指)를 했다든가 오맹종 곡죽생순 진왕상와빙구이(吳孟宗 哭竹生筍 晋王祥臥氷求鯉)라 한 겨울 눈속 대밭에서 죽순을 얻고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다 부모님께 푹 고아서 들였다거나 하는 효(孝)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러나 요즈음 그런 미담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지키고 꼭 남겨야 할 미풍양속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효는 인간의 인격이고 존엄성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꼭 간직하고 반드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가치였다. 그런데 그 지고지순한 덕목은 차차 사라지고 불효에 관한 이야기만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은퇴자금이 선진국의 4분의 1이 안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이유야 두말할 것도 없이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부모가 은퇴할 때까지 번 돈을 모두 밀어 넣는 탓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하는 선진국과는 달리 결혼해서 부모님의 뒷바라지가 필요한 우리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가 성장해도, 살림을 나도 꾸준히 뒷바라지한다. 부모가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으며 자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냉정하고 매몰차게 분가시키는 날짐승과 들짐승보다도 우리 인간이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인들이 1년에 4천 명 이상이 자살하고 80%가 최저 생계비로 연명한다는 이야기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보모를 버리는 패륜이 속출하는 것도 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슬픈 일이다.

부모님을 여행시켜 드린다고 제주도로 데리고 가서 버리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봐 끝까지 집 전화번호나 이름을 모른다고 잡아뗀다는 이야기도 우리를 정말로 슬프게 하는 것이다. 부모를 그렇게 버려놓고 마음 편하게 과연 잠을 잘 수가 있었는지 이 슬픈 현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효는 포상하여 더욱 장려해야 할 것이다. 불효자에게는 엄벌하여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에 앞서는 것이 도덕이지만 도덕적으로 안 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일찍이 공자님께서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 하셨고 과이물개(過而勿改)면 시위과의(是謂過矣)라 하셨다.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되었다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큰 잘못이다.’라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것은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고 있고 정부에서는 말로만 노인복지를 강조하면서도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포상하여 더욱 장려해야 할 것이고 불효를 하는지는 엄벌하여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정부에서 무슨 대책을 세워서 우리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의 눈에서 다시는 눈물 나는 일이 없도록 정치하시는 분들의 특별한 대책을 기대해본다.

젊어서는 평생토록 자식을 위해 헌신하시고 늙어서는 그 자식들의 손에 의해서 버려지는 안타까운 장면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위정자 정치하신 분들은 국민이 당신들만 밀어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해결해주실 것처럼 하시다가 막상 당선만 되면 과거를 묻지 마세요, 복지부동하면서 이러한 일 들이 하나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으니 정말로 안타깝고 가슴이 답답하다. 애완견이 방에 똥을 싸면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치우지만 만약에 자신을 낳아서 평생을 뒷바라지하시고 고생하시다가 연세 드시고 병약해서 치매까지 오게 되어 당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늙은 부모가 방에다가 만약에 실례를 했다면 그날부터 바로 부모와 같이 살 수가 없다고 난리를 치면서 하루빨리 어느 요양원으로 보낼 생각만 할 것이 뻔하다.

만약에 우리 인간을 다른 짐승들처럼 낳아만 놓고 돌보지 않는다면 단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누누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사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기를 낳아서 적어도 최소한 삼 년 이상은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가면서 보살펴 주어야 그 아기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일만분의 일이라도 부모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삼년상을 모시고 나머지 부분은 방 안에서 부모님이 살아 계신 것처럼 정성을 다해 제사를 모시게 됐는데, 옛날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르는 것이 맞다 고 해서 지금도 모두가 3년 상을 치르지는 않는다.

또 3년 상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어느 누가 비난하거나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다. 세월이 흘러 부모는 늙고 힘도 없고 이제 부모는 가진 게 없다. 너무 늙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 푼 용돈을 얻기 위해 자식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 마음 같지가 않다. 부목 내미는 손이 보기가 싫은 것이다. 부모님께서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도 그분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리는 것이 극히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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