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아버지 내 아버지(父子有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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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아버지 내 아버지(父子有親)
  • 장강뉴스
  • 승인 2021.05.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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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부생아신(父生我身), 아버지께서 내 몸을 낳게 하시고 모국오신(母鞠吾身), 어머니께서 내 몸을 기르셨다.

최일중
최일중

아버지는 나에게 생명을 준 근원이며 현재의 나는 조상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부자유친(父子有親), 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이 있어야 한다. 부모는 배가 골아도 자식부터 먹이는 것이 부모다.

옛말에 농부는 자기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처럼 보기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조상을 알면 나를 알고 나를 알면 조상을 안다고 하였다. 아버지와 자식은 1촌이다. 아버지와 자식은 피를 같이 나눈 육친이다. 자식은 보무에 의해 태어나고 양육되며 그 자녀가 부모가 되면 그를 낳고 길러준 부모이다.

가정이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 가정을 이루며 급기야 탄생하는 세상의 가장 기본적이며 작은 사회공동체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정을 깨닫고 질서를 배우며 사람됨을 터득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대가족 제도 아래서 오랜 세월을 지켜온 우리네 삶의 형태가 어느 날 갑자기 핵가족시대로 탈바꿈을 향해 가족이라는 개념이나 생활의 패턴이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변모하면서 예측하지도 못하고 상상하지도 못한 부정적인 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세상을 바꾸어 놓는 바람에 가치관의 혼란과 함께 대처능력이 상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편리 주의를 우선으로 하다 보니 후손을 찾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워 부부만의 단출하게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 생각하지만, 인간의 본성인 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허무감과 허탈감 속에 반려동물이란 파충류인 뱀까지 방안으로 끌고 들어와 함께 생활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각자 선호도에 따라 생각이 다양하게 나타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막상 자기를 낳아서 길러준 부모에 대한 정성이나 생각은 갈수록 멀어져 가족의 목록에서조차 빠지는 기가 막힐 일까지 보편화 되고 있다.

현재 젊은이의 생각에는 가족의 한계를 자기 부부와 직계자식 그리고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는 개나 고양이를 꼽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증상이야말로 인류가 처한 마지막 말세의 증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증세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자기를 낳아 길러준 아버지란 자식으로 인해 흐뭇한 일을 맛보거나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며 집 안팎을 돌거나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랑이다.

또한, 아버지는 자기가 기대한 만큼 자녀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하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속이 상해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이 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아버지는 이른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직장으로 나서지만, 그곳은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이 아니라 그곳은 머리가 셋인 달린 용과 싸우는 전투 장소이다.

첫째, 용은 피로요. 둘째, 끝없는 일이요. 셋째는 직장 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내가 정말 아버지 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혼인시킬 때 속으로는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의 나타내는 사람이다. 자식들이 어렸을 적에 밤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열 번이나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을 때이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아들과 딸들이 나를 닮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라 아들과 딸들은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변하는데 4세 때에는 아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7세 때는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 때는 아빠와 선생님 가운데 누가 더 많을까. 12세 때는 아빠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14세 때는 우리 아버지와는 세대 차이가 난다. 25세 때는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이제 기성세대는 갔다. 30세 때는 아버지의 의견도 이리가 있다. 40세 때는 자기 아내에게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라고 한다.

50세 때는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다. 60세가 되면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오늘도 짐이 되기보다 힘이 되어주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효란 인간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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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에서일하는사람 2021-06-05 21:09:24
좋은 글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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