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현대인의 외로움을 비추는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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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현대인의 외로움을 비추는 가로등
  • 장강뉴스
  • 승인 2021.05.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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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영(장흥군청 건설도시과 주무관)

피부에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김광균 시 ‘와사등’에서

윤인영
윤인영

김광균의 대표시 ‘와사등’은 가스등을 일컬으며, 도시의 풍경 속에서 쓸쓸하게 서있는 자아의 비애를 표현한다.

김광균이 스마트 가로등이 보급되는 현대까지 살았더라도 그의 시에서 가로등은 쓸쓸한 모습으로 표현 될 것이다.

고층 건물 속에서 인적 없는 새벽을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은 외롭기 그지없지만 묵묵하게 현대인의 고독한 밤을 비춘다.

1900년 4월엔 종로 네거리에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 주변을 밝히기 위해 3개의 가로등이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그 당시 사람들은 놀라서 빛을 보고 달아나는 사람까지 있었다.

120여 년이 지난 지금, 가로등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어둠을 밝히는 든든한 벗이 되어 준다.

가로등은 가스등(위의 와사등)에서 수은, 나트륨, 삼파장 등을 거쳐 현대의 LED 스마트 가로등에 이르렀다.

과거에 가로등지기들이 석유를 직접 채우고 작동시키는 시대를 거쳐 자동으로 일출, 일몰 시간을 입력하여 조절하는 타이머 방식이나 무선으로 원격 조작하는 방식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가로등이 생활 깊숙이 자리하면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 단순히 TV를 보는 생활에서 밤이라는 시간적 제한을 받지 않고 일이나 운동을 포함한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사회적 환경 변화도 컸겠지만 어두운 밤거리를 밝게 밝혀 주는 가로등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가로등 업무를 맡으면서 그 전보다 관심을 갖고 관찰해 보니, 가로등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밤의 벗이라고 할 수 있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학생, 벗들과 한잔 기울이는 사람, 새벽에 출근이나 종교 활동 등으로 일찍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가로등이 없었다면 어떻겠는가? 깜깜한 길을 다니는 불편함은 둘째 치고, 안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장흥에서는 9,000여 개의 가로등을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가로등은 2019년도부터 표찰을 붙여 전산을 통해 가로등 위치 및 유지관리를 관할하고 있다.

또한, 안전 메카 장흥에 걸맞게 연 100여 개 정도의 가로등을 설치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는 노후 가로등 교체 사업을 추진하여 노후화된 나트륨, 삼파장 가로등을 고효율 LED 가로등으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LED등은 기존 등에 비해 수명이 길고 효율도 높아 군민들의 반응이 좋은 사업이다. 그러나 늦게까지 문을 여는 편의점이나 가게가 없는 외진 곳이 많기 때문에 아직은 주민들 수요를 충족하기에 예산이 역부족이다.

설치에 따른 예산이 수반되는 부분도 있지만 연 10억 정도 소요되는 공공요금과 유지관리 비용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로등 설치 수요가 있는 한편, 철거 관련 민원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주택가에서는 너무 밝아 잠을 못 잔다고, 농경지 주변에서는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밤에도 너무 밝으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체 리듬이 교란되기 때문에 가로등 관리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바람꽃이 노래한 ‘비와 외로움’의 ‘길가에 가로등 내 몸을 비추면 살며시 찾아드는 외로움’의 가사처럼 가로등은 외로운 현대인을 비추고 있다.

낮에는 길가의 키 큰 쇠붙이에 불과하지만 밤이 되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날려도, 바람이 몰아쳐도 가로등은 사계절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쓸쓸한 밤을 묵묵히 밝힘에도 우리는 당연시하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로등처럼 당연시하는 소중한 존재에게 안부 인사를 하는 건 어떨까? 단순 고철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가로등을 통해 참 많은 걸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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