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할머니 인연(因緣)
상태바
독자기고 - 할머니 인연(因緣)
  • 장강뉴스
  • 승인 2021.04.13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형영(강진향우)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서영씨의 10여 년 전 센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안형영
안형영

객실 승무원들이 한차례의 서비스를 마친 후 일부가 벙커(여객기 안에 있는 승무원들의 휴식공간)로 휴식을 취하러 간 시간이었다.

서씨가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객실을 한바뀌 도는데 할머니 한 분이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원가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서 서씨가 다가가 여쭸다.

“도와드릴까요?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데 있어요?” 할머니는 잠시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서씨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 내가 틀니를 잃어버렸는데 어느 화장실인지 생각이 나지 않아 어떡하지?” 서씨는 “제가 찾아보겠다”며 일단 할머니를 안심시킨 후 좌석에 모셨다. 그러곤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객실 안에 있는 화장실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없고 두 번째도 없고 마침내 세 번째 쓰레기통에서 서씨는 휴지에 곱게 싸인 틀니를 발견했다. 할머니가 양치질하느라고 잠시 빼놓고 잊어버리고 간 것을 누군가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린 것이었다.

서씨는 틀니를 깨끗이 씻고 뜨거운 물에 소독까지 해서 할머니께 갖다 드렸고 할머니는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까지 서씨에게 여러 번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세월이 한참 흘러 그날 일이 서씨의 기억속에서 까맣게 잊혀질 즈음 서씨의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와 결혼 약속을 하고 지방에 있는 예비시댁에 인사드리기로 한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날이었다.

남자친구는 서씨에게 미국에서 외할머니가 오셨는데 지금 서울에 계시니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했다. 예비시댁 어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분이라 서씨는 잔뜩 긴장한 채 남자친구를 따라 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런데 할머니를 뵌 순간 어디서 뵌 듯 낯이 익어 이렇게 애기했다. “할머니, 처음 뵙는 것 같지 않아요. 자주 뵙던 분 같으세요”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서씨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시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며 “아가, 나 모르겠니? 틀니, 틀니” 했다고 한다.

그러곤 그 옛날 탑승권을 여권 사이에서 꺼내 보이는데 거기에는 서씨 이름이 적혀있었다. 할머니는 언젠가 비행기를 타면 그때 그 친절했던 승무원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름을 적어 놓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외손자와 결혼할 처자가 비행기를 타는 아가씨라 해서 혹시나 했는데 이런 인연이 어디 있느냐”며 좋아했고 서씨는 예비시댁 어른들을 만나기도 전에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사랑받으며 잘 살고있다. 할머니 틀니를 찾아준 고마운 마음씨는 서씨의 사람 됨됨이에서의 인과 연을 만드는 연줄이었다.

어리석은 사랑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모두 언제나 늘 아름다운 인연 만들어 가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