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인간(人間)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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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인간(人間)의 마음
  • 장강뉴스
  • 승인 2021.01.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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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논설위원)

한반도에 상륙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됐다.

최일중
최일중

지구의 재앙으로 각종 질병, 바이러스 재난으로 물(水), 불(火), 폭염(暴炎), 혹한(酷寒)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인간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데 인간인 것이다라고 중국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우리나라 교수 신문은 지난해를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그 사자성어는 한 해의 정치, 사회 상황을 대변하거나 풍자하는 뜻이다. 어쩌면 내로남불과 흡사한 뜻으로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의미로 한자어를 표기했는지도 모른다.

906명 교수진들의 사자성어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1위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

2위 후안무치(厚顔無恥) 낯이 뜨거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3위 격화소양(隔靴搔) 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

4위 첩첩산중(疊疊山中) 여러 산이 겹친 산속이다.

5위 천학지어(泉학之漁) 말라가는 샘에서 물고기들이 서로를 돕는다.

6위 중구삭금(衆口金)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이다.

인간은 거칠고 견고한 폭력, 위선, 뇌물의 시대에 살아간다. 아픈 시대는 마음이 불편하고 부끄럽다. 공대생을 위한 공학윤리 수업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선물과 뇌물의 차이다.

서로 무엇을 주고받았을 때 공개해도 상관없는 것이 선물이고 공개가 불편한 것이 뇌물이다.

받는 것을 기대하며 주는 것은 뇌물이고 받는 것과 무관하게 주는 것은 선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뇌물과 선물에 대한 현상적인 분석일 뿐 뇌물과 선물을 가르는 마음의 문제까지 도달하지 못한 듯하다.

선물의 미덕은 건네줌의 기쁨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다. 선물의 경험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데 인간은 그 행위를 인과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대접하면서 얻는 것은 주는 기쁨 그 자체이다. 그러나 커피를 대접하면서 돌아올 기대를 그 선물에 투시하는 순간 선물의 의미는 증발된다.

선물을 뇌물로 만드는 작인은 결국 마음이다. 이는 쉽게 감추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청문회 카메라와 법과 사회는 조명하지 못해도 적어도 그 마음의 중심은 알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행위에는 드러난 사건 그 이상으로 내면에서 작동되는 마음의 뜻이 중요한 무게를 지닌다. 마음은 우리 행위의 시험대이다. 선물도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사랑의 행위에 대한 형상적 이해를 넘어선다.

가장 좋은 것은 선물 주는 것 자체가 좋아서 그 다음은 부채감 때문에 그러나 좋지 않은 것은 대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는 선물 그 순간 선물은 뇌물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받는 삶보다는 심지어 대가를 기대하는 유혹이 우리를 엄습한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선물을 건네는 연습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는 우리의 삶 자체가 누구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출발점이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주는 것을 받는 것과 연결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너의 행복을 향해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 너의 기쁨을 향한 삶이 나에게 고통이 아니라 행복일 수 있다는 것, 나를 낮추면서 너를 높이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삶이리라.

키에르케고르는 타인을 위해 자기를 제한하는 행위보다 더 신의 강력함을 나타내는 것은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는 행위보다 더 위대한 행동은 없다고 말한다.

사랑, 비움, 선물은 타인을 향해 자기의 권리를 주는 것, 혹은 자기의 일부와 전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 포기가 율법이나 계약이나 의무를 넘어선 선한 마음이라면 이는 매우 신성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 사회의 견고한 구석들이 급격하게 요동친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열망이 눈물과 함께 여러 곳에서 맺혀진다.

그간 우리를 사로잡았던 파시즘, 힘, 권력, 제도, 외형적인 화려함의 득이 조금씩 붕괴되고 있는 것일까? 이 변화는 인간의 마음과 그 심연을 더욱 중요하게 바라게 한다.

혹시 사회는 그동안 더욱 도덕적이고 영적인 인간을 갈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회는 우리 안의 내면적 도덕성, 인격성, 영성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가를 묻는다.

이 세상은 우리가 숨을 수 있는 곳일까? 우리는 이웃과 세상을 속일 수 있을까? 이는 세상의 투명성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어쩌면 신이 창조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투명하고, 맑고 깊은 지도 모른다. 기울어가는 세월호 안에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건네준 어느 학생의 마음을 헤아린다.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친구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 그의 마음에서 인간의 구원과 생명의 참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인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을까?

거친 폭력 앞에서 그간 숨죽여 살아왔던 이들의 슬픈 고백을 들으며 우리의 죄와 타락한 사회의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의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실로 마음은 구원의 시험대이다.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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