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칼럼 - 세월(歲月)은 흐른다(流水不復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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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칼럼 - 세월(歲月)은 흐른다(流水不復回)
  • 장강뉴스
  • 승인 2020.12.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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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중 논설위원

제야의 종은 한해 마지막 날 자정 서울 광화문 보신각 종을 33번 치는 것을 말한다.

최일중
최일중

대표적인 새해맞이 행사다. 매년 국민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대한 행사로 치러졌다. 하지만 올핸 이 행사를 보기 어렵게 되었다.

서울시가 이 행사를 열리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탓이다.

경자년이 자리를 비우려 한다. 새로운 기운으로 다가오는 신축(辛丑)년에 자리를 물러주기 위해서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세월은 어김없이 올해도 갈길을 서둘러 경자(庚子)년의 해가 서서히 기울어간다.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流水不復回).

세월이란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다. 세월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거듭 흐르지도 않는다. 또한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2020년이 2021년이 되고 12월이 1월이 되듯이 해(歲)와 달(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우리는 세월이 흐른다고 한다.

흐르는 것은 시간이다. 강물도 흐른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도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20대를 다시 살 수 없는 것도 강물과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흐르는 것는 돌이킬 수 없다.

강물은 도대체 왜 흐르는 걸까? 산에서 바다로는 흐르지만 거꾸로 바다에서 산으로 흐르는 강물은 없다.

물리학에서는 강물이 흐르는 이유를 중력과 관련된 에너지를 가지고 설명한다. 강물이 산에서 바다로 흐르고 동전이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는 낮은 곳에 있을수록 에너지가 낮기 때문이다.

모든 물체는 더 낮은 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공간 안의 모든 흐름은 낮은 곳을 향한다. 시간이 흐르는 이유를 물리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에는 동반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엔트로피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말한다. 음식물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이 조각조각 분해되어 흡수되는 소화의 과정에서 위장은 비고 엔트로피는 늘어난다.

손목시계가 저장된 에너지로 움직인다면, 배꼽시계는 엔트로피 증가로 움직인다. 강물은 에너지로 흐르고 세월은 엔트로피로 흐른다.

세월이 흐르면 세상도 변한다. 함께 흘러 강물의 흐름을 알려주는 나뭇잎처럼 세상의 변화를 명확히 드러내는 사건들이 있다.

한 국회의원의 옷차림이 나뭇잎이 되기도 했고 고민없이 익숙했던 절름발이라는 표현의 나뭇잎이 세상의 강물에 새롭게 떠오르기도 했다.

나란히 함께 흘러 있었지만 몰랐던 새롭게 드러난 것들은 죽비가 되어 나를 깨운다. 세월이 흘러 생각이 이어진다.

흐르는 강물 위 작은 나뭇잎을 바라보며 세상의 흐름을 떠올린다. 저 나뭇잎과 같은 시대를 나는 함께 흐르고 있는지 저 산 계곡물 좁은 과거만을 기억하며 제자리에서 우물쭈물 맴도는 꼰대 물방울은 아닌지...

세월은 저 혼자로서 기록을 지어놓으며 밤낮없이 흘러만 간다. 1년 365일, 경자년에서 신축년으로 흘러만 가는 시간을 보면 무한한 세월이 있고 무한한 경계가 있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니, 그 사이 무한한 공부와 무한한 사업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곧장 넉넉하게 한두 시간을 보내고 하루, 이틀 더 보내더라도 아직 많은 세월과 경계가 있어 일하기에 여유가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 때문에 여유만만하고 기세등등하여 새벽에 할 일을 아침으로 미루고 아침에 할 일을 낮으로 미룬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 할 일을 다시 그 다음날로 미룬다. 그저 미루는 일만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날이 가고 달이 가며 봄이 오고 가을이 오게 된다. 어느새 섣달 그믐날이 온다.

뒤돌아보면 지나간 세월과 경계가 눈깜박할 사이처럼 느껴지지만 어떠한 공부나 자잘한 사업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뜨끔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남은 며칠이 더욱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년회를 가진다. 원래 망년(忘年)은 나이를 잊는다는 뜻이다.

한 해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다시 거창한 새해 다짐을 하는 것, 나로서는 그리하고 싶지 않다. 한 번쯤은 나이를 잊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새해 다짐은 내년의 일로 미루고 그만 만나지 못한 가족과 친지, 벗과 이웃 사람을 만나 조촐한 마음을 갖는다면 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이제 한 해가 저물려 하는데 오늘 하루를 놓치면 올해는 끝내 활짝 웃을 수 없지 않겠는가? 이 날은 책 읽는 이는 책을 덮고, 나무하는 이는 일손을 놓고 일체 세상사의 시비와 영욕을 모두 벗어던지고 등불을 밝힌 개울가 집에서 함께 둘러앉아 보자.

가족과 친척, 이웃과 벗들이 즐겁게, 흡족하게 한바탕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모두들 입을 벌리고 활짝 웃게 되리라.

하던 공부 하던 일 제쳐두고 이러한 망년의 모임을 갖고 싶지 않은가? 그래도 한 해를 보내면서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편할 것 같으면 다시 책을 보면 된다.

섣달그믐을 제석(除夕)이라 한다. 제석은 무엇인가를 제거해야 할 저녁이라 정의한 다음 이렇게 적었다.

제거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제거하여야 할 것은 분노를 반성하면 분노가 제거되고, 욕심을 막으면 욕심이 제거된다.

용모를 바르게 하면 포악하고 게으르고 간사하고 편벽된 기운이 제거된다. 생각을 하나로 모으면 번잡하고 허황한 잡념이 제거된다.

제야는 반성의 날이다. 올 한 해의 잘못된 점을 하나 하나 제거하고 나면 새로 맞는 한 해는 더욱 새로운 나날이 될 것이다.

이런 각오로 한 해를 맞는다면 스스로 마음이 조금 더 편하고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경자년은 코로나19로 거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부디 신축년은 코로나 없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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